[위크엔드 카페]“삼선슬리퍼도 좋지만 결혼도 해야잖우”

  • 입력 2008년 12월 19일 03시 00분


“망신, 망신 이런 망신도 없지. 이 ‘쓰레빠’ 때문에…. 아휴∼ 속 터져!”

냉수를 냅다 벌컥벌컥 마신 이 여인, 기자의 대학 동창이자 유명 회계법인의 공인회계사입니다. 그는 소문난 ‘패셔니스타’입니다. 한창 공부할 때도 매 주말이면 서울 강남구 청담동 편집매장에서 쇼핑을 즐겼고, 회계학원론보다 패션 브랜드들의 신상 카탈로그에 더 심취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울상을 짓는 이유는 바로 슬리퍼 때문입니다. 오랜만의 소개팅.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하게 치장했죠. 마침 약속장소가 집 앞이어서 예감도 좋았답니다. 하지만 너무 편했던 탓일까요? ‘마실 간다’고 생각했는지 슬리퍼를 신고 나간 게 탈이었습니다. 짓궂은 소개팅 남은 “어 삼선(三線) 슬리퍼(사진), 나도 있는데”라며 ‘확인사살’까지 했다네요. 그는 결국 30분 만에 퇴짜를 맞는 비운의 여인이 됐죠.

무의식적으로 신을 만큼 일상이 된 삼선 슬리퍼. 여고생 교실부터 회사 사무실, 신림동 고시촌까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요. ‘국민 슬리퍼’가 된 이 제품에는 ‘삼디다스’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세 개의 흰색 줄이 있어서? 실은 이 슬리퍼의 원조가 독일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제품이기 때문이죠.

1972년 ‘아딜렛(adilette)’이란 이름으로 탄생한 이 제품은 아디다스의 불꽃마크 속 흰 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짙은 남색과 흰 줄의 단순함 때문일까요? 제 아무리 획기적인 슬리퍼라도 삼선 앞에서 무릎을 꿇었죠. 영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도 삼선 슬리퍼를 신고 스타벅스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실 정도니까요.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는 한달 평균 2만 켤레의 삼선 디자인 슬리퍼가 팔린다고 합니다. 인터넷 삼선 슬리퍼 동호회가 생겨나는가 하면 누리꾼들은 삼선 슬리퍼 ‘자작 광고’ 동영상까지 만들고 있습니다.

4년째 삼선 슬리퍼를 애용한다는 한 패션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선 네트워크’라고 들어봤어요? 동네 친구들과 집 근처 맥줏집 갈 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 슬리퍼를 신고 나와요. 삼선은 끈끈한 우정의 증표라고나 할까?”

한 한복 디자이너는 전국적인 인기 비결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이건 필히 뜰 운명을 지녔어요. 보세요. 선이 세 개죠. ‘삼 세번’, ‘3판 2승제’에 길들여진 한국인에게는 딱이죠.”

그러자 이들의 ‘삼선홀릭’을 전해들은 한 연애 상담가가 한 마디 합니다. “그래요. 그런데 앞으로 소개팅에는 신고 나가지 마세요. 삼선도 좋지만 결혼은 해야 하잖우.”

김범석 산업부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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