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지오그래픽]겸재 따라잡기<下>철원 삼부연폭포

  • 입력 2008년 12월 19일 03시 00분


내금강 길목, 벼락같은 물줄기… 어찌 그냥 지나쳤으랴

《1000원 지폐가 있거든 한번 살펴보시죠. 그리고 퇴계 이황 선생의 얼굴이 보이거든 뒤집으십시오. 옛 그림이 보이지요. 바로 조선 후기에 진경산수화의 세계를 연 ‘국민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이 그린 ‘계상정거도’입니다. 앞면은 퇴계 선생이 후학을 기르던 안동의 도산서원입니다. 겸재 따라잡기. 사실은 따라잡을 것도 없습니다. 겸재는 항상 여러분의 호주머니, 그리고 지갑 속에 있으니까요. 그러니 도산서원에 가시거든 부디 잊지 말고 1000원권 지폐를 꺼내 겸재의 그림과 함께 감상하는 여유를 놓치지 말기를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겸재의 ‘삼부연’ 폭포그림을 따라잡기 위해 강원도 철원 땅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 철원에 관한 오해 세 가지

무심코 철원을 ‘경기도’라고 생각하는 것, 철원의 랜드마크인 ‘한탄강(恨歎江)’을 ‘한 맺힌 땅’의 부정적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비무장지대의 ‘안보관광지’니까 볼거리나 맛집이 궁색한 따분한 여행지일 거라는 지레짐작, 이 세 가지다.

연천과 포천(이상 경기도)에 이웃하지만 철원은 엄연히 강원도다. 한탄강 역시 같다. 원래는 ‘한여울’이다(연천군지 기록). 한자어로 바뀌며 그리 작명됐다. ‘한탄’에 분단의 설움이니 궁예의 아픔이니 하는 것을 가져다 붙이는 것은 견강부회식의 사족이다. 철원은 실제 가보면 여행지로도 매력 만점의 고장이다. 한겨울이면 시베리아에서 날아오는 검독수리와 두루미, 오리, 기러기를 코앞에서 감상한다. 또 얼어붙은 한탄강 강심을 걸으며 협곡 양안으로 발달한 주상절리의 화산암 풍치를 맛볼 수 있는 멋진 곳이다.

먹을거리도 그렇다. 맛으로 최고를 자평하는 오대미 흰 쌀밥이 있고 그 쌀로 만든 쌀국수가 있다. 군청은 ‘향토관광음식개발연구회’까지 두고 ‘한탄강 메기탕’과 ‘철원 쿨포크 왕(돼지)갈비’ ‘물고추냉이 쌀국수’ 등 향토음식을 개발해 군내 식당에 식재료와 레시피를 제공할 만큼 적극적이다. 물론 향토 맛집도 곳곳에 있고. 그래서 ‘겸재 따라잡기’의 철원 삼부연폭포 기행은 실제로는 겸재를 통해 ‘철원 다시보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 금강산의 길목, 철원

겸재와 철원. 조금은 뜬금없고 약간은 난데없다. 조선 팔도의 그 많은 풍경을 두고 하필이면 철원일까라는 생각에서다. 물론 이런 생각은 철원에 관한 이해 부족의 소치다. 그도 그럴 것이 철원 땅을 휴전선 아래로만 국한해 반세기 이상 보아온 분단 세대니까. 그리고 어떤 교통지도도 민통선 이북 땅의 지도를 싣지 않아서다. 굳이 한국 전도를 펼치고 살피려는 노력이 없는 한, 철원의 위치는 물론이고 그 지정학적 가치를 알 리 없다. 그러니 겸재의 철원기행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구 철원읍은 동해안의 간성(고성군청 소재지)과 위도가 비슷하다. 간성은 아다시피 금강산 관광의 유일한 전진기지다. 금강산은 두 개다. 내륙의 내금강과 동해의 외금강 이렇게. 그런 만큼 남쪽의 접근로 역시 두 개다. 그 포스트는 철원과 고성. 남북이 분단되기 전까지 남측 사람들은 이 두 루트로 금강산을 찾았다. 1931년 금강산 전기철도(철원∼내금강) 개통 후 분단 직전까지는 기차가 관광객을 실어날랐다. 고성에서는 건봉사가 루트의 초입이었다.

겸재 생전인 조선 후기 18세기도 상황은 같았다. 한양에서 금강산을 가자면 포천을 거쳐 철원을 경유하는 루트가 가장 짧고 빨랐다. 이쯤 알고 나면 이해가 간다. 겸재의 철원기행이 ‘금강산 화가’ 겸재의 금강산 사생여행길에 이뤄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삼부연’폭포도가 금강산여행의 부산물임을.

○ 금강산 화첩에 나오는 삼부연폭포를 찾아

겸재는 평생 금강산을 세 차례 다녀왔다. 그의 나이 35세 때인 1711년과 이듬해(1712년 8월), 그리고 71세 때인 1747년. 그리고 매번 금강산 도첩을 남겼다. ‘풍악기행’과 ‘해악전신첩’ 두 권(1712년과 1747년)이 그것이다. 이 중 1712년 해악전신첩만 빼고 두 책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간송미술관에 각각 소장돼 있다. 현재 전해진 ‘삼부연’은 1747년 두 번째 해악전신첩에 들어 있다.

그 삼부연을 찾아 철원을 향했다. 철원도 두 개다. 철원군청이 있는 ‘신 철원’(갈말읍)과 19세기 말 일제강점기에 개발의 중심이었던 구 철원(철원읍)이다. 삼부연은 신 철원의 시내 동쪽, 명성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었다. 대개 폭포라면 계곡의 깊숙이에 숨듯 자리잡아 어지간히 발품을 팔지 않는 한 그 비경을 맛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삼부연은 전혀 달랐다. 군청에서 2.3km 거리, 그것도 도로가에 있었다. 그러니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큰 수고 들이지 않더라도 겸재의 ‘삼부연’을 쉬이 따라잡을 수 있다.

지난 주말 찾은 삼부연. 언제 가도 그렇지만 가끔 차를 세우고 구경하는 과객 몇 사람 외에는 찾는 이가 없어 한적한 곳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 내린 겨울비 덕분에 폭포의 수량은 눈에 띄게 늘었다. 이곳은 늘 그늘이다. 그리고 산중턱의 계곡이다. 그래서 기온이 신 철원 시내보다 늘 낮다. 아니나다를까. 폭포 중간의 벽에 얼음이 얼었고 그 위로 눈이 살짝 덮여 있었다. 1월에 찾았을 때는 아예 폭포 전체가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비단에 담채로 그린 겸재의 ‘삼부연’. 갓 쓴 선비 넷이 하인 두 사람을 데리고 물가의 둔덕에 서서 폭포와 주변 계곡의 경치를 감상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 둔덕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누구든 그 자리에서 겸재의 그림처럼 폭포를 감상할 수 있도록 길도 나 있었다.

삼부연(三釜淵)이라는 이름은 이렇게 왔다.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세 차례 추락하면서 폭포를 이루는데 각 폭포의 용소(龍沼·추락한 물이 고인 연못)가 솥(釜·부) 모양으로 보여서다. 그날 보니 폭포 역시 그대로였다. 좌우로 방향을 바꾸어 세 차례 낙하하는 물이나, 솥 모양을 담은 용소 역시 그림과 실제가 똑같았다. 259년이라는 시간. 그런데도 변치 않은 자연, 그리고 그 세월을 초월해 겸재와 내가 한 공간을 소유한다는 이 기막힌 사실. 누구든 감격할 만한 특별한 체험이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찾아가기: 국도 3호선보다는 국도 43호선이 더 낫다. ▽삼부연=의정부∼국도 43호선∼포천∼영중면∼영북면∼갈말읍내(철원군청)∼우회전.

◇맛집 △철원평야가든(주인 김규문): 연꽃 못을 갖춘 식당 겸 숙소(연꽃펜션). 철원 오대미에 잣 밤 대추 올리고 연잎에 싸서 지어낸 연밥(8000원)과 갖가지 한약재를 넣고 연잎에 싼 채 고아내는 한방닭백숙(4만 원)이 주 메뉴. 최소 한 시간 전 주문 필요. 고석정에서 동송 방향 300m(동송읍 장흥리 71-5), 033-455-1799, 010-8933-1799 △고궁갈비(주인 김태영); 쿨포크 왕갈비 한 대에 1만1000원, 동송읍 이평리 684-34, 033-455-1535 △폭포가든(주인 정찬호): 메기매운탕 전문, 2만∼4만 원. 연중 무휴. 동송읍 장흥3리(직탕유원지). 033-455-3546 △옛고을 순두부: 쌀국수냉면(5000원). 동송읍 이평10리. 033-455-9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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