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나홀로 신부’ 4년째 이제야 눈-귀가 트이네요”

  • 입력 2008년 12월 19일 03시 00분


■ ‘산골 살이’ 책으로 펴낸 김태원 신부

“신부가 와 스님처럼 산에서 사는교?”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경상도 출신 신자의 말이다.

그는 4년째 강원 평창군 금당계곡 근처 해발 750m 고지의 황토 집에서 산다. 휴대전화도 연결되지 않는다. 계곡 물에 세수하고 농사짓고 기도하는 게 일과다.

김태원(57·사진) 신부. 최근 산 생활을 담은 책 ‘꼭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삶’(시골생활) 출간 때문에 모처럼 서울 나들이에 나섰다. 크지 않은 체구에 짧게 자른 머리카락, 순박한 웃음이 스님까지는 아니라도 농부를 연상시킨다.

“어쩌다 산에서 마주치면 스님이나 도인쯤으로 보는 사람도 있어요. 난 속으로 신부인데 하며 웃지.”

천주교 원주교구에 소속된 그는 2005년부터 국내 연수로 산에서 생활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그림을 공부한 화가 신부로 옻칠 그림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이 책은 밥 짓기부터 김치 항아리 구덩이 파기, 땔감용 통나무 장만하기, 장작 패기, 야외 화장실 만들기, 서투른 농사꾼의 잦은 실수 등 산 생활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건강이 좋지 않아 땅 냄새를 맡으며 살고 싶어 산으로 들어왔어요. 기도를 하면서 내 삶도 돌이켜 보고 그림 공부도 마음껏 하고 싶었죠.”

하지만 산 생활은 모든 것이 불편하고 힘겨웠다. 산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 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도시에 살면서 몸과 마음이 망가진 상태였죠. 겨울 채비를 하면서 지금까지 주님께서 저를 업어서 여기까지 데려왔지만 지금부터 제 힘으로 일어서겠다고 기도했어요.”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자 자연은 몇 배의 보답을 했다. 두 번째 겨울을 넘기자 혈압이 떨어지고 몸무게는 15kg이나 줄었다.

“산 생활을 하니 이제야 귀가 뚫리고 눈이 밝아지더군요. 생명을 다시 발견했어요. 자연의 주인인 생명체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예술적 자극도 받고 있습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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