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프로젝트]슬럼프를 넘어 희망으로

  • 입력 2008년 12월 19일 18시 05분


항해중인 권영인 박사와 송동윤 대원.
항해중인 권영인 박사와 송동윤 대원.
"그냥 짐 싸서 우리랑 갈래요?(이성환 PD)"

"…. 이제는 나 혼자 만의 일이 아닌 것 같아. 가야지.(권영인 박사)"

이달 4일(현지시간), 본보 이성환 PD와 박근태 기자 등 취재팀이 촬영을 마치고 바하마를 떠나던 날, 이 PD가 농을 던졌다. 그리운 한국으로 가지 않겠냐고.

그러나 권 박사(47)는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다윈의 항로를 따라가는 탐사 계획은) 이제 나만의 일이 아니고, 학문적으로도 의미를 갖는 일이다"고 말했다.

긴 항해를 하다보면 슬럼프도 겪는 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초심. 권 박사 눈 속에는 '다윈 탐사'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짙어 보였다고 이 PD는 전했다.

▼ 남아메리카 대륙을 눈앞에

"1월 중엔 남아메리카 대륙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아."

취재팀은 바하마를 떠나고 열흘이 넘은 19일 권 박사와 위성전화로 통화할 수 있었다. 권 박사의 목소리는 밝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전날 바하마의 남쪽 끝자락 섬 롱아일랜드까지 60마일 가량을 한 번에 항해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날씨와 장비에 발이 묶여 마음고생을 하다 순풍을 받으며 쾌속으로 달리니 기운을 찾은 것 같았다.

풍속계와 풍향계가 문제를 일으킨 데다 바하마 남쪽 섬에선 수리할 곳도 마땅치 않아 걱정은 되지만, 그런 사소한 문제들에는 이제 적응한 듯 했다.

권 박사는 "오늘 크룩트 아일랜드(Crooked Island)까지 가려다 6m가 넘는 파도를 만나 다시 회황했다"며 "그래도 잘 하면 1월 중엔 '대륙'에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아들 같은 탐사대원의 힘

"이쪽이 지름길이잖아요.(송동윤 대원)"

"그 길은 문제가 많아. 그게 뭐냐면…(권 박사)"

카리브 해를 누비고 있는 장보고 호에는 늘 권 박사와 송동윤(20·연세대 경영학과 휴학) 씨의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린다.

권 박사와 송 씨의 나이 차이는 27세. 권 박사가 결혼을 빨리 했으면 아들도 됐을 법한 나이다. 권 박사가 보기에 송 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막가자' 식이고, 송 씨가 보기에 권 박사는 너무 신중한 것 같다. 송 씨는 신세대답게 적극적으로 항해에 대해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편이고, 이에 대해 권 박사는 조근 조근 설명해 준다.

싸우면서 친해진다고, 둘은 아버지와 아들처럼 어느새 막역한 사이가 됐다. 송 씨의 톡톡 튀는 생각들이 권 박사에겐 활력소가 된다.

올해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새내기 송 씨는 대학 요트부를 통해 권 박사를 알게 됐다. 둘은 대학 동아리 선후배다. 송 씨가 권 박사의 다윈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했다. 다른 친구들은 각종 회사에서 인턴을 하며 취업준비를 하는데, 외아들이 그런 작은 배에 몸을 맡기겠다니….

송 씨는 "과학적 지식은 없지만 바다에 나가 항해하는 것이 경영 마인드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며 "환경이 파괴된 현장을 보며 올바른 기업활동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새로운 시장 창출의 기회를 찾아보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바다의 세계에서 싫으나 좋으나 동반자가 된 권 박사와 송 씨는 다음 목적지인 크룩트 아일랜드(Crooked Island)를 향해 다시 한 번 의지를 가다듬고 있다.

김현수기자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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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영상뉴스팀 이성환 PD


▲동아일보 영상뉴스팀 이성환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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