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링크]순수했던 시절의 나를 아는 친구

  • 입력 2008년 12월 20일 02시 59분


그가 오래도록 곁에 있다면 행운

◇친구에게 가는 길/밥 그린 지음·강주헌 옮김/224쪽·1만 원·푸른숲

저자는 어느 날 친구 척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척은 저자의 가장 친한 친구 잭의 소식을 들려준다.

“잭이 아프다.”

잭의 병은 암이었다. 불과 3주 전만 해도 매년 그랬던 것처럼 생일 축하 전화를 걸어왔던 잭이었다. 저자는 잭과 직접 통화를 한다. 잭은 의사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차분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전했다. “어렵다는 군.”

저자와 잭은 미국오하이오 주 벡슬리 캐싱엄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입학하던 다섯 살 때 처음 만났다. 성인이 된 뒤 잭은 고향에 남고, 저자는 시카고로 생활 터전을 옮겼지만 둘의 우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잭의 시한부 선고 소식을 들은 저자가 잭을 만나러 가면서, 고향에서 잭을 만나 옛날에 함께 놀던 골목길을 돌아보면서, 친했던 친구들이 모두 모여 잭과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면서 느끼는 감상을 담은 책이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저자의 글은 담담하고 차분하지만 평생지기를 보내는 슬픔이 뚝뚝 묻어난다.

그는 둘 사이의 우정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다음 날 동틀 녘 잠에서 깬 나는 이제 아내가 곁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을 느꼈다. 전화벨이 울렸다. 간신히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가져갔다. 잭이었다. “시카고야.”

나는 그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 그가 시카고에 오겠다는 말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오늘 아침 첫 비행기를 탔어.”

전화도 없이, 마중을 나오라는 말도 없이 시카고행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던 것이다. 그가 다시 말했다. “자네가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으리란 걸 알아. 상관없네. 계속 여기 호텔에 있을 테니까 내가 자넬 위해 할 일이 있다면 언제라도 연락하게. 자네가 연락할 때까지 여기 있겠네.”

잭은 나를 대신해 아내의 사망 증명서를 떼 주기도 했다.

그랬던 잭이 아프다. 그래서 저자는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잭을 위해 그의 곁에 있을 차례’라고. 그는 “순수했던 시절의 자신을 아는 친구가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곁에 있어 준다면 그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고 말한다.

우정을 소재로 한 책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꾸준히 출간된다.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인 자핑아오의 에세이집 ‘친구’(이레)는 자신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책에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삶을 나누고 이해하고 함께할 수 있으면 피붙이 여부를 떠나, 연령의 고하를 떠나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거문고 줄 꽂아놓고’(돌베개)는 서로의 생각과 삶을 존중한 옛 사람들의 우정을 다룬 책. 서신, 시, 일화 등을 통해 정몽주와 정도전, 이황과 이이, 이항복과 이덕형 등 옛 사람 24명의 우정을 소개했다.

로마시대 정치인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사유를 담은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숲)는 대화 형식으로 우정에 관한 철학적 담론을 다룬다. 우정의 가치는 무엇인지, 우정이 지켜야 할 원칙들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도록 하는 책.

‘우정이라는 이름의 가면’(철학과현실사)은 다양한 임상 사례를 토대로 우정이 무너지는 이유, 긍정적인 우정이 삶에 미치는 효과 등을 분석했다. 프랑스 소설 ‘얼굴 빨개지는 아이’(열린책들)는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새빨개지는 꼬마 카이유와 아무 데서나 재채기를 하는 라토의 우정을 다뤘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