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라도 시간 되는 사람은 같이 가자고 했는데, 다들 바쁘다면서 선뜻 가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들 셋에, 딸 둘! 오남매씩이나 되는데, 누구 하나 시간 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저 혼자 짐을 챙겨 친정으로 갔습니다.
부모님께서 “아이고, 먼데까지 뭣헐라고 왔으야∼ 그냥 우리끼리 천천히 혀도 되는디” 하시면서, 표정만큼은 아주 반갑게 저를 맞아주셨습니다.
저는 얼른 집으로 가서 일바지로 갈아입고,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점점 허리가 아파 오고, 무릎은 콕콕 쑤시고, 흙은 자꾸만 얼굴로 튀어 올랐습니다.
슬슬 집에 내려오지 않은 동생들 생각이 나며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저희 부모님은 반나절을 꼬박 하시면서도 힘들다 소리 한번 안 하셨습니다. 저녁때는 힘에 부치셨는지 저녁은 대충 먹고 얼른 눕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있는 반찬 대충 꺼내서, 배추 시래기 국 끓여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이상하게 아까부터 깍두기가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무가 좀 다른 것 같았습니다. 저는 “엄마. 이거 무 맞아요? 무슨 무가 이렇게 부드러워요?” 하니까 어머니께서 “그거. 니 막내 올케가 보낸 거여. 우리가 이가 안 좋아가꼬 딱딱한 걸 못 먹잖여. 갸가 그걸 알았는지 무를 살짝 삶아가꼬 깍두기를 담갔드라” 하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묻자 “그게 말여. 숙깍두기라고 혀서 원래 그래 묵는 법이 있어야. 근디 갸는 젊은 아가 어데서 이런 걸 배웠는지. 어쨌든 마니 보내줘가꼬 니 아부지랑 나랑 만날 이거 해서 밥 묵는다” 고 하셨습니다.
깍두기를 다시 먹어봤습니다. 아삭아삭! 마치 단물 빠진 배를 씹는 것 같이, 무가 아삭거리는 느낌이 참 신기했습니다. 그 날 저녁, 막내올케한테 전화해서 물어봤습니다. 숙깍두기 만드는 걸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습니다.
올케가 “회사에 어떤 분이 어르신들 깍두기는 그렇게 담가드린다고 했어요. 처음엔 그냥 흘겨 들었는데, 어머님 이 안 좋다는 얘기 듣고, 다시 여쭤봤어요.
무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서, 끓는 물에 살짝 삶고, 나중에 안 삶은 무랑 반반씩 섞어서 담그면 된대요. 쉬워 보여서 해봤는데, 처음이라 맛도 별로예요. 자꾸 맛있다고 하시니까 제가 오히려 민망해요. 형님!”하면서 연신 별거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고구마 캐러 안 왔다고 섭섭하게 생각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그 날 저녁, 고구마를 드시던 어머니께서 그러셨습니다.
“나는 느그들 보면 맴이 다 편혀. 오남매 다들 짝 찾아서 오순도순 잘살고, 사우도 메느리도 그만허면 착하고 성실허고 냄들은 자식들끼리 싸움질 혀서, 보네, 안 보네 헌다는디, 우리 집은 그란 것도 없고. 그저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재” 하셨습니다.
저희 오남매! 누구 하나 특별히 잘 나지도 않고, 못 나지도 않고, 다들 둥글둥글 잘 어울리니 부모님 말씀대로 이것도 복입니다.
다음 날, 상자에 고구마 담아 동생들한테 택배로 보냈습니다. 동생과 제부와 올케들이 고맙다고, 그리고 수고했다고 전화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막내 여동생은 맛탕 해 줄테니 다들 모이라는 단체 문자까지 보냈습니다.
그 문자들을 보는데, 왜 그렇게 마음이 훈훈하던지…
가깝게 지내는 우리들 모습이 다시 한번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충남 아산 | 박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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