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욕망이 자연 ‘착취’
더불어 사는 길을 묻다
2009년 2월 15일까지 서울 남현동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02-598-6247)에서 열리는 ‘오래된 미래’전은 물질적 풍요를 향해 질주하며 생태계를 짓밟아온 인간의 폭력적 행태를 돌아보는 전시다. 동시대 미술의 시각에서 때로는 감성적으로, 때로는 직설적으로 증언하는 불편한 진실은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를 되짚어준다.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전시를 꿰뚫는 핵심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유토피아가 진정한 이상향일까’라는 질문을 파고든다. 여락 정경희 심현주 등 작가 15명은 삶과 죽음, 순환과 비순환, 자연과 인공의 경계 등을 탐색하며 관객들과 함께 이에 대한 답을 만들어간다.
쾌적한 공기에 간간이 새소리가 들려오는 녹색의 정원을 선보인 손정은의 ‘복락원’. 실제 정원 같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새도 나무도 생명력이 없다. 작가는 생장과 소멸의 운명을 지닌 자연을 항상 변치 않는 모습으로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박제된 정원을 통해 비판한다. 인공절벽과 인공연못 등을 그린 공성훈의 회화는 익숙한 듯 낯설다. 원초적 자연을 파괴하고, 그 대체물로 인공 자연을 즐기는 ‘거짓 낭만’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 작품이다.
디스토피아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생태적 상상력으로 치유의 영역을 꿈꾸는 작품도 있다. 식물과 동물이 섞인 혼성적 생물체를 선보인 우에마쓰 다쿠마.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얽혀 살아가는 공생의 생태계를 암시한다. 여행하며 수집한 돌멩이를 모아놓은 김순임의 ‘어디서 굴러먹던 돌멩이’는 인간이 아닌, 자연중심적 시각을 보여준다. ‘소리 약(藥)’을 선보인 이학승의 경우 자연과 인공의 소리를 조합한 ‘딱따구리 구멍 파는 소리’ ‘고드름 녹아내리는 소리’ 등으로 생태주의적 메시지를 재치 있게 드러낸다.
#조화로운 공존
자연과 인공 세계의 접점은 없는 것일까. 내년 1월 15일까지 두산갤러리(02-708-5050)에서 열리는 ‘Light & celebration’전은 빛을 매개로 한 작품을 통해 두 세계의 공존을 시도한다. 이장섭의 작업에선 멀리서 보면 나뭇잎 같은데 들여다보면 서울 파리 로마 등의 도로망이 보인다. 대도시의 길을 자연의 조화로운 복잡계에 빗대 형상화한 작업이다. 자작나무와 정교하게 다듬은 장식을 결합한 박진우의 ‘캔디 트리’, 동물 모양으로 만든 한지 조명을 선보인 유혜영의 작업은 자연과 인위적 세계의 공생을 모색한다.
자연과 생명을 바라보는 미술의 시선은 궁극적으로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닿아 있다. 30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1층(02-736-1020)에서 열리는 사진가 최광호의 ‘생명의 순환’전. 생명이 싹을 틔워 무성하게 피어나 사라지기까지 생성과 소멸을 담은 작품은 수채화처럼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카메라 없이 촬영한 포토그램 기법으로 제작된 사진은 인간의 헛된 욕심이 순환의 고리를 망가뜨리기 이전의 세계에 한발 다가선다. 사람이든 풀잎이든 살아있는 것은 시들거나 소멸하기에 더욱 매혹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선 결핍과 불편함에 대한 내성도 익혀야 한다. 잘못된 방향임을 알았다면 주저 없이 돌아서는 것도 용기다. 생각을 바꿔야 새로운 희망이 보인다. 하긴, 우리 삶도 그렇지 않던가.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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