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회 동아연극상]파격적 실험 ‘원전유서’ 5관왕

  • 입력 2008년 12월 31일 02시 59분


거대한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가는 소외자들의 삶을 그린 동아연극상 대상작 ‘원전유서’. 사진 제공 연희단거리패
거대한 쓰레기 더미 속에서 살아가는 소외자들의 삶을 그린 동아연극상 대상작 ‘원전유서’. 사진 제공 연희단거리패
4시간 30분,형식-내용서 관객 사로잡아

쓰레기매립지 사람들이 겪는 혼란 묘사

극단 연희단거리패(대표 김소희)의 ‘원전유서(原典遺書)’가 올해 제45회 동아연극상 5관왕이 됐다.

30일 열린 동아연극상 심사에서 원전유서가 최고상인 대상을 비롯해 연출상(이윤택), 희곡상(김지훈), 연기상(김소희), 무대미술·기술상(장해근)의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원전유서는 쓰레기 매립지 위에서 사는 사람들이 지번(地番)을 요구하면서 겪는 혼란을 묘사한 작품. 4시간 반의 긴 공연 시간으로도 화제가 됐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김윤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는 “긴 공연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면서 “올해 무대에 오른 작품 중 단연 돋보인다”고 대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상금은 2000만 원.

이 작품으로 관객과 처음 만난 신인 극작가 김지훈 씨는 희곡상(상금 200만 원) 수상자가 됐다. “기성 작품을 출발선으로 삼으려는 여타의 신인 작가들과는 다른 감각”(이강백 서울예대 교수)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좋은 희곡이 주목받은 건 좋은 연출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심사위원들의 지지와 함께 원전유서의 연출을 맡은 이윤택 씨가 연출상(상금 200만 원)을 받는다. 이 씨는 동아연극상 연출상 최다 수상자(4회)가 됐다.

5t 트럭 3대 분량에 이르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이룬 원전유서의 무대가 무대미술·기술상(상금 200만 원)을,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자식들과 함께 밭을 일구는 어진네 역으로 원전유서에서 열연한 김소희 씨가 연기상(상금 각 200만 원) 수상자로 선정됐다. ‘돌아온 엄사장’에서 욕망을 위해 비열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 엄사장 역을 맡은 엄효섭 씨도 연기상을 받는다.

유인촌신인연기상(상금 각 150만 원)은 ‘방문자’에서 프로이트의 갈등을 끌어내는 방문자 역을 맡은 김수현 씨, ‘최종면접’에서 치열하게 노력하는 입사지원자 역을 맡은 김정은 씨가 수상하게 됐다. 올해 처음 만들어진 신인연출상(상금 150만 원)은 연극 ‘트릿’과 ‘억울한 여자’로 주목받은 박혜선 씨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새개념연극상(상금 단체 500만 원)은 “새로운 형태의 연극을 치열하게 시도하는 보기 드문 단체”(김방옥 동국대 교수)라는 평을 받은 극단 동(대표 강량원)에 돌아갔다.

특별상(상금 200만 원)은 지난해 세상을 떠난 극작가 윤영선 씨에게 주어졌다. 1주기를 기념해 10월 열린 ‘윤영선 페스티벌’을 통해 “사후에 더 인정받는 작가”(김윤철 교수)로 조명돼 수상하게 됐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심사위원 명단:

△위원장 김윤철(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방옥(평론가·동국대 교수) △노이정(연극평론가) △이강백(극작가·서울예대 교수) △이병훈(연출가) △최상철(무대미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가나다순)


▼“연극정신 놓지 않으려는 희망으로 읽고 싶어”▼

연출상 이윤택 씨 인터뷰

“연극계가 연극 정신을 놓지 않으려는 희망으로 읽고 싶습니다.”

연극 ‘원전유서’로 연출상을 수상한 이윤택(동국대 연극학과 교수·사진) 연출은 수상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이 교수는 “요즘 연극이 너무 상업적이고 대중극 중심이라서 일부러 반대로 갔다”며 “이런 연극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연극이 살려면 대극장에서도 실험극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젊은 연출가들일수록 소극장에서 일상극만 하려 한다. 다양한 시도가 나오지 않으면 TV나 영화에 종속될 수 있다”며 일침을 놓았다.

그는 희곡을 쓴 김지훈(29) 씨에 대해 “최인훈 씨처럼 희곡을 문학적으로 쓸 수 있는 보석을 발견한 것 같다”며 “원래는 5시간 40분 분량이었다. 나는 내용을 빼내느라 바빴고, (서사시 같은 대사 때문에) 배우들은 입에 안 맞는 대사로 고생했지만 보람 있는 작업이었다. 좀 더 보완해 내년 가을에 다시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향후 계획에 대해 “4월에 올리는 뮤지컬 ‘이순신’이 가장 큰 과제”라며 “이순신의 탄생, 죽음, 존재의 생성과 소멸 등에 대해 철학적으로 다룰 예정인데 기존 뮤지컬과 다른 완전히 ‘골 때리는’ 작품이 될 것이니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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