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및 러시아정교의 성화(聖畵)인 이콘(icon)의 탄생과 변모 그리고 서구에 끼친 영향을 총체적으로 다룬 방대한 저술. 러시아어문 전공자로 1980년대 프랑스 파리 근교 생조르주 정교공동체에서 정교의 교리와 이콘의 제작기법을 직접 배우며 이콘의 미학에 눈을 뜬 이덕형 성균관대 교수의 20년 연구 성과가 집적된 책이다. 그는 이콘을 징검다리 삼아 ‘천년의 울림―러시아 문화예술’(2001년)과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2006년)란 저술을 통해 각각 러시아정교와 그리스정교의 미학을 심층 소개해 감탄을 자아낸 바 있다. 이 책은 그 두 책의 정수를 이콘을 통해 통합시켰다고 할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전통은 서로마(라틴)와 동로마(비잔티움)로 나뉘면서 각각 말씀(로고스)과 형상(이콘)을 강조하는 분리가 이뤄진다. 말씀의 전통이 모더니즘에서 정점을 이룬다면 형상의 전통은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해 폭발적으로 분출된다. 인간 중심이 아닌 신 중심, 주체 중심이 아닌 타자 중심, 단성(單聲)이 아닌 다성(多聲)을 강조하는 이콘의 미학이 서구문화에서 어떻게 변용되고 전복됐는지를 발견할 수 있다. 가장 오래된 6세기경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 이콘을 비롯한 200여 장의 진귀한 이콘 도판이 수록돼 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