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을 두고 ‘장가들러 왔다’고 하는 말에서 ‘들다’는 비유해서 말하자면 ‘호랑이 굴 들기’나 다를 바 없다. 초례청(醮禮廳)과 신방이 차려진 혼례식장인 신부의 집은 신랑으로서는 수난과 시련과 고통뿐만 아니라 수모까지 겪어야 하는 곳이다. 신부 측에서 신랑에게 건네주는 모든 수난과 간고(艱苦) 따위를 견디고 이겨내는 보상으로 마침내 신랑은 신부를 얻어낸다.”
한국, 한국인, 한국문화 연구에 헌신해 온 서강대 김열규 명예교수가 혼례와 암각화, 음식, 숫자, 육체, 남녀관계 등 6개의 키워드로 한국 문화를 조명한 책이다. 전공인 국문학뿐 아니라 민속학과 문화인류학, 분석심리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토대로 우리 문화 속에 숨겨진 코드를 찾아낸다.
저자는 전통 혼례를 교환 의례라고 말한다. 중매를 하는 의혼 단계부터 신랑과 신부 측의 정보와 재물 교환이 시작되는 의식이며 그렇게 해서 신랑이 최종적으로 얻는 교환물이 신부라는 것이다.
암각화와 관련해 남녀 성기를 닮은 두 개의 바위가 토속신앙 체계에서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 과정, 남녀 관계에서 남성에게만 있고 여성에게는 없는 특정 칭호들의 의미 등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이 책은 서강대 출판부가 내는 서강학술총서의 첫 권이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