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62년 경제개발 5개년계획 발표

  • 입력 2009년 1월 13일 02시 55분


상공부 화학과장은 갱지 10여 장에다 사인펜으로 그린 차트를 들고 최고회의에 갔다. 장성들 앞에서 브리핑을 했는데 화학공업 부문에 대한 내용이었다.

공장별로 생산 제품명, 규모, 국내 수요, 건설비, 건설기간, 외화 절약액, 고용증대 효과를 정리했다. 재정위원장인 김동하 해병소장이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화학공업 부문 5개년 계획이 통과됐다는 소문이 정부청사 안에 퍼지자 중공업을 담당하는 다른 과(課)는 물론 다른 부처에서 사람이 달려왔다. 계획서는 부처의 모범답안이 됐다.

오원철 전 대통령경제수석이 ‘박정희는 어떻게 경제강국 만들었나’라는 회고록에서 소개한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의 모습이다.

군사정부는 경제발전에 사활을 걸었다. 쿠데타의 명분을 위해서도, 북한과의 대결에 승리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했다.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절망적인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 경제의 재건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공약이 이런 사정을 보여준다.

관료들이 만든 계획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기 위해 쿠데타 직후인 7월 22일 경제기획원이 생겼다.

경제기획원은 부처별 초안을 확대 보완해서 1962년 1월 13일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1966)이란 이름으로 공식 발표했다.

‘三兆二千億 投入, 年平均 七·一% 成長. 投資財源 民間 44%·政府 56%, 失業率 24%를 15%로. 二次産業에 重點, 國民總生産 一人當 19% 增加’

다음 날 동아일보 1면 제목을 보면 야심 찬 국가발전전략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외환 보유액이 바닥나자 정부는 1년 뒤에 계획을 축소했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5%로 하향 조정하고 총투자를 줄였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정부와 기업이 총력을 기울인 효과가 서서히 나타났다. 1960년 3283만 달러이던 수출액이 1966년 2억5575만 달러로 늘었다. 다음 해에는 3억5859만 달러, 1970년에는 10억38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한강의 기적, 대한민국 발전의 초석이 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박정희 정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다. 4·19혁명으로 집권한 장면 정부가 골격을 세워 놓았었다.

장면 정부가 경제발전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개발전략을 마련했고 박정희 정부가 다듬어 추진했다고 평가해야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송상근 기자 songm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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