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가슴 보듬는… 아! 엄마

  • 입력 2009년 1월 14일 03시 02분


《출간 두 달 만에 20만 부 돌파, 한국출판인회의 집계 새해 첫 베스트셀러 1위…. 지난해 11월 출간된 신경숙(46)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새해 빅히트 반열에 올랐다. 치매 증상이 있는 엄마의 실종을 통해 한평생 가족에게 헌신적이며 자신의 아픔을 감내해 왔던 엄마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한국문학이 강세를 보였던 지난 한 해 동안 베스트셀러가 30만 부 안팎의 판매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엄마를 부탁해’의 상승세는 이례적이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이 추세대로라면 한국문학으로 모처럼 밀리언셀러를 기대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 20만부 돌파… 왜 열광하나

이런 인기는 중장년층의 감성까지 울리는 애틋한 모성, 불황기 각광받는 가족서사의 힘, 미스터리 기법의 매력 등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독자들은 ‘어머니’가 아닌 ‘엄마’의 모습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리뷰에는 “읽는 내내 친정엄마를 떠올리며 읽었는데, 작품 속의 엄마가 어느새 나의 엄마로 바뀌어져 있었다.”(leesh4327) “내일이면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엄마라는 존재를 이제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kblueo)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신경숙 씨도 출간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어머니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는데 좀처럼 풀리지 않다가 ‘엄마’라고 한 뒤부터 이야기가 술술 풀렸다”고 말했다.

1990년대부터 섬세한 문체와 내향적 자기 성찰로 여성 독자들을 흡인해 온 신경숙 작가의 힘은 ‘엄마 신드롬’을 부채질했다. 특히 작가의 자전적 요소들이 구체적으로 녹아들어간 일화들은 엄마가 된 뒤 엄마의 존재를 다시금 이해할 수 있게 된 30, 40대 여성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 작가의 독자층은 20, 30대 여성이 많았으나 이번 신작을 통해 외연이 확대됐다.

인터넷서점 예스24에서 지난해 11월 말부터 한 달간 진행한 ‘엄마를 부탁해 독자 리뷰대회’에도 이 연령대 여성 독자의 참여율이 70%를 넘는다. 독자들은 “중학교 아들의 입학금을 내기 위해 엄마 왼손 중지에 반지가 없어지는 장면”(chpink), “자취하던 나를 위해 정성껏 싸 주신 반찬 통들이 무겁고 창피해 가져가기 싫다고 투정을 부렸던 날”(juidy1017) 등 소설의 에피소드에서 자기 경험(아픔이나 상처)과의 일치점을 발견하는 글을 올리고 있다. 창비 김정혜 문학팀장은 “‘낭독회’ ‘작가 사인회’를 비롯한 독자 초대 행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물던 40, 50대 남성독자도 눈에 많이 띈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정홍수 씨는 “핵가족화가 압축적으로 진행된 우리 사회의 중장년층에겐 대가족 안에서의 헌신적 어머니 상은 여전히 현재적”이라며 “이들이 생각하는 가족과 어머니라는 정서에 소설이 부응하면서 공감대와 설득력을 끌어냈다”고 말했다.

경제 위기로 가족 간 유대감을 더없이 절실하게 여기는 것도 독자들의 반향을 이끌어내는 요인으로 손꼽힌다. 가족서사란 보편적인 소재나 자식으로서의 원죄 의식 등은 어느 시기, 어느 작품에서도 볼 수 있지만 경기 침체로 인한 아픔을 가족을 통해 치료하고자 하는 경향과 맞물리며 상승효과를 냈다는 분석이다. 출판계는 외환위기 때 우리 사회를 뭉클하게 했던 ‘아버지 신드롬’과 마찬가지로, 이번 ‘엄마’ 신드롬 역시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조직이자 개인의 모태가 되는 가족(엄마)을 통해 위안을 얻고 싶어 하는 사회적 심리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불황기에는 복고적, 과거 지향적 서사가 인기를 끈다는 통설이 있는데 힘들고 어려울수록 가족 간 유대감이 오히려 더 절실해지기 때문”이라며 “모성에 대한 원초적 아픔을 건드리는 것이 인기를 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과 모성이란 전통적 소재를 서정적이고 섬세한 시선으로 다루면서도 ‘엄마의 실종과 추적’이란 미스터리 기법을 도입해 재미와 긴장감을 유지한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큰오빠, 딸, 남편 등 각 장에서 화자가 전환되는 다중 시점과 ‘너는 엄마를 잃어버린 것조차 나흘 후에야 알았으니까…’처럼 독자를 극 속에 직접 몰입시키는 서술방식도 이야기를 절절하게 읽어내도록 이끌고 있다.

신경숙 작가는 “마음이 어렵고 힘들수록 문학을 통해 위로를 받는 일이 늘어난다. 내 가족, 우리 엄마 이야기라고 느끼는 이가 많기에 독자들의 호응도 무척 빨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많이 이야기된 것 같지만 한국 문학 속에서도 엄마란 존재는 늘 주변부였다. 독자들에겐 엄마에게 전화를 한 번 더 해보게 되는 계기가, 문학적으로는 엄마의 자리가 마련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동아닷컴 박태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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