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여백]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 입력 2009년 1월 16일 02시 58분


《이달 7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9층 라운지.

광택이 흐르는 검은색 비올라 케이스를 오른쪽 어깨에 멘 그가 정확히 약속한 시간에 나타났다. 180cm의 키에 ‘조막만한’ 얼굴, 디올(Dior)의 남자 모델을 연상케 하는 슬림한 몸매를 가진 그는 블랙 가죽 재킷에 회색 티셔츠,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코가 날렵한 블랙 에나멜 구두에서는 ‘요즘 청년’의 시크한 패션감각이 물씬 묻어났다.

“와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인사를 건네며 활짝 웃는 그의 얼굴에는 좋은 인상의 눈가 주름이 몇 개 생겨났다.

최근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젊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었다. 》

이틀에 한번꼴 연주여행

“달리기로 시차 극복하죠”

○ 멈추지 않고 ‘달리는’ 비올리스트

오닐은 세계 클래식 음악계가 주목하는 ‘블루칩’ 연주자. 올해 31세인 그는 미국, 한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세계 각지에서 공연을 하고 각국의 주요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한다. 1년의 절반이상은 호텔에서 지낸다.

그는 앨범을 녹음하고, 책을 쓰며, 드라마도 촬영하고(얼마 전 ‘베토벤 바이러스’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광고도 찍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학생들도 가르친다.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정말 ‘남는 시간’이란 게 거의 없어요. 하지만 최소한 일주일에 네 번, 1시간씩은 거르지 않고 반드시 하는 일이 있죠. 바로 마라톤 연습이에요.” 어릴 적부터 달리기를 좋아해 10km 정도는 거뜬히 뛰었다는 그는 지난여름부터 마라톤 출전을 결심하고 진지한 준비를 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마라톤은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다스릴 수 있는 운동이라 좋아요. 달릴 때만큼의 시간은 내 시간이죠. 나의 과거와 미래, 지금의 나를 둘러싼 수많은 일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요.”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마라톤을 목표로 연습하고 있다는 그는 요즘 하루 30km 정도를 달린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해변을 따라 달리기를 즐기고, 시애틀에서는 그가 참여하는 앙상블 ‘디토’의 멤버이자 고(故) 피천득 시인의 손자로 잘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 스테판 재키와 만나 함께 달린다고 했다.

○ 다음엔 꼭 동아마라톤 달리고파

“원래는 올해 3월에 서울에서 열리는 동아마라톤대회에 꼭 참가하고 싶었어요. 코스가 정말 아름답고 달리기도 좋거든요. 그런데 공연 일정이 겹쳐버려서….”

오닐은 실제 서울의 마라톤 코스를 줄줄 꿰고 있었다. 청계천에서 출발해 서울숲, 성수대교를 거쳐 한남대교를 넘은 뒤 다시 이태원, 남산을 지나 청계천으로 돌아오는 게 서울에서의 연습 코스라고 했다.

그가 좋아하는 또 다른 도시는 독일 쾰른.

“마라톤을 하기에 굉장히 좋은 도시예요. 도시 주변을 따라 달리면 25km 정도를 뛸 수 있는데 경관이 아주 멋지고 아름답죠.”

심하면 이틀에 한 번꼴로 비행기를 타는 그에게 마라톤은 시차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도 했다.

“새로운 도시에 가서 새벽 4, 5시에 잠을 깨면 별로 할 일이 없어요. 인터넷은 오래하는 편이 아니고, 친구한테 전화하기도 이상한 시간이고요(웃음). 그럴 땐 달리는 게 최고예요.”

달리다 보면 넘어질 때도 있고, 넘어지다 보면 심하게 다칠 때도 있다. 그의 오른쪽 팔꿈치에는 지난여름 세게 넘어져 생긴 상처의 흉터가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사고를 두려워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운동이든 인생이든 마찬가지죠. 다만 전 아주 늙어서까지 계속 달리고 싶기 때문에 요즘은 꼭 보호대를 착용하고 조심해서 달리고 있어요.”

○ 차를 타고 달리면 행복한 미소가

그는 두 발로 달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네 발로 달리는 것도 좋아한다. 바로 자동차다.

“드라이브를 정말 좋아해요. 정말 너어-무 좋아요(웃음). 제가 로스앤젤레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거예요. UCLA에서 강의를 마친 뒤 해안 도로를 타고 샌타바버라에 있는 집으로 가는데 이때마다 항상 자동차 광고를 찍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웃음)”

오닐의 차는 스포츠카 버전의 검은색 렉서스 ‘IS350’이다.

“지붕을 열고 창문을 다 내린 뒤, 자동차 시트의 온도를 올리고 쌀쌀한 겨울바람을 맞으며 달려요. 주로 쇼팽이나 바흐의 음악을 틀고요. 이렇게 해변을 따라 달리며 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워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복 받은 거예요(웃음).”

그에게 얼마나 빨리 달리냐고 묻자 매우 쑥스러워하며 “오, 아주 느려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코너링만큼은 빠른 걸 좋아한다고 했다.

“대학 때 처음 산 차가 혼다 어코드였어요. 하루는 옆 좌석에 할머니를 모시고 드라이브를 나섰는데 옆을 보니 할머니가 두 눈을 질끈 감고 시트를 꼭 붙잡고 계신 거예요. ‘오 마이 갓, 나는 널 이렇게 가르치지 않았는데!’라고 외치시면서요(웃음).”

오닐은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는지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자서전에는 여든의 나이에도 손자의 악기 레슨을 위해 10시간 가까운 거리를 단 한 번도 마다 않고 운전했던 할머니의 진한 사랑이 곳곳에 기록돼 있다.

이날도 오닐은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공항으로 달려가 미국으로 날아갔다. UCLA에서의 강의를 위해서라고 했다. 비올라와 클래식 음악, 자신의 삶에 대한 오닐의 열정은 멈출 줄 모르는 그의 달리기와 많이 닮아있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이 기사에 관한 더 많은 내용은 동아일보 위크엔드 팀블로그(www.journalog.net/teamweekend)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리처드 용재 오닐은

한국인 어머니… 세계가 주목하는 젊은 연주자

세계 클래식계가 주목하는 젊은 한국계 미국인 비올리스트. 1978년생. 5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13세 때 우연히 비올라를 접하고 그 ‘깊고 편안한’ 소리에 매료돼 비올리스트의 꿈을 키운다.

6·25전쟁 때 고아가 돼 미국으로 입양된 장애인 어머니와 아일랜드계 미국인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2004년 KBS 다큐멘터리 ‘인간극장’을 통해 그의 삶이 소개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 초 그가 펴낸 책 ‘공감’에는 시골마을의 가난한 농부로서 그를 음악가로 키워내는 데 헌신을 다한 조부모의 애틋한 사랑이 잘 녹아 있다.

비올리스트로는 최초로 미국 유명 음악학교인 줄리아드음악원에 입학했다. 이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모스크바 체임버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 오케스트라와 수많은 협연 및 솔로공연을 펼쳤다.

2006년에는 미국 최고 권위 클래식 상인 에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을 받았다. 같은 해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솔리스트 부문에도 노미네이트됐다.

국내에서는 6명의 젊은 남성 클래식 음악가로 구성된 앙상블 ‘디토’의 멤버로도 활약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세계적 음반사인 유니버셜 뮤직과 함께 바로크 음악을 비올라로 해석한 앨범 ‘미스테리오소’를 발매하기도 했다. 그의 1집과 2집 앨범은 각각 2005년 골드 디스크와 2006년 넘버원 베스트 셀링 클래식 앨범으로 선정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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