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연작 단편집 『화성연대기』를 남긴 SF소설가 레이 브래드베리의 주장이다. 아쉽게도 소설가들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우울한 미래에 대한 20세기 SF소설가들의 기록은 21세기의 허리를 관통하는 오늘날 대부분 현실로 거듭났다. 특히 로봇에 관한 예측은 놀라우리만큼 정확했다.
‘로봇 방송국’만 해도 그렇다.
20세기 말 도쿄의 어느 소설가가 쓴 로봇 방송국 이야기는 허황되다는 평단의 비난을 면치 못했다. 로봇이 만들고 로봇에 관해 이야기하고 로봇이 즐기는 방송! 이것은 영락없이 ‘로봇공학의 결정체’였다.
<보노보> 개국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이 선을 보였다. 인류를 위해 남다른 공을 세운 로봇을 집중 조명하는 토크쇼 <로보 사피엔스 인터뷰>는 이 채널의 백미였다.
첫 초대 손님으로 로봇이 아닌 인간 ‘오드리 스미스 박사’가 선정되었다. 올해 꼭 백 살을 채운 스미스 박사는 평생을 로봇 연구에만 전념한 원로 로봇공학자였다. 학부에선 수학을 전공했지만 서른다섯 살에 로봇공학으로 전공을 바꿔 인공지능 분야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 인물로 평가되었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로봇공학의 암흑기인 21세기 초, ‘로봇은 2050년 인간 지능을 앞설 것이며, 인간은 로봇과의 공생을 위해 지금부터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과격한 공학주의자’로 내몰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카메라를 이마에 부착한 로봇들이 약속된 위치에 서서 앵글을 맞추고 실시간 편집로봇이 ‘준비 완료’ 사인을 보내자, 무대를 정리하던 스태프 로봇들이 한꺼번에 무대 밖으로 빠진 후 녹화가 곧바로 진행되었다. 80데시벨 780헤르츠 톤의 하이톤 웃음소리와 둔탁한 금속성 박수 소리가 20초간 지속되더니, 사회를 맡은 로봇MC 남과 서령이 웃으며 경쾌하게 무대로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여러 봇! 우리 ‘로보 사피엔스 인터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 봇’이라고요? 역시 로봇MC 남이세요! 여러 봇! 이거 유행어 되겠는데요.”
“괜찮았어요? 감사합니다. 서령 씨, 제가 어렸을 때 들었던 2009년도 농담 하나 해드릴까요?”
“좋아요! 뭔데요?”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 전구를 갈아 끼우려면 로봇이 몇 명 필요한지 아십니까?”
“수명이 다한 전구를 갈아 끼우는 일이야 요샌 도우미로봇의 기본 업무로 내장되어 있는데……. 글쎄요, 답이 뭔가요?”
“세 명입니다. 한 명은 사다리에 올라가 전구를 붙잡고요, 나머지 두 명이 사다리를 돌린대요.”
“호홋, 그게 2009년식 농담인가요?”
“21세기 초반 로봇들이 얼마나 멍청한가를 꼬집는 이야깁니다. 로봇공학의 암흑기에도 과감한 예측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현생 인류 다음으로 지구를 지배할 이는 로봇이다’라는 발언으로 너무나 유명한 공학자 오드리 스미스 박사님을 오늘 모셨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하지요!”
100데시벨 1040헤르츠의 박수소리가 무대를 가득 메웠다. 초대 손님 오드리 스미스 박사가 무대로 등장해 가볍게 손을 흔든 후 소파에 앉았다. 탁자에 놓인 자동번역 핀을 착용한 뒤 가볍게 눈웃음을 지었다. 흰 눈썹 아래 밝은 갈색 눈동자가 어깨에서 찰랑이는 금발과 어울려 우아했다.
“로봇방송국의 개국을 보시면서 감회가 새로우시겠어요, 스미스 박사님.”
“먼저 로봇방송국 개국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저는 로봇의 미래를 매우 낙관했던 사람입니다만, 이런 날이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습니다. 로봇은 지난 50년간 현생 인류를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만, 이젠 로봇이 로봇 스스로를 위해 무엇인가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로봇이 맘껏 즐길 수 있는 방송을 만드시라 부탁드립니다.”
스미스 박사의 벅찬 기분은 텍사스 특유의 강한 억양에 그대로 묻어났지만, 자동번역으로 흘러나온 서울특별시 표준어 음성은 매우 침착했다. 번역기가 스미스 박사의 감정까지 옮기진 않는다.
“박사님, 로봇MC 남이 2009년도 농담을 하나 들려주었는데요, 21세기 초에는 로봇이 정말 멍청했나요? 옛날 로봇 얘기 좀 들려주세요.”
스미스 박사는 눈을 감고 잠시 추억에 잠겼다. 그리고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로봇의 역사를 요약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로봇을 만들기 시작한 시기는 무척 오래되었습니다. 로봇이란 단어가 카렐 차페크에 의해 고안된 것은 1920년도의 일이지만, 기술자 자크 드 보캉송이 ‘걷고 먹고 배설할 수 있는 오리’를 만든 것은 1739년이었죠. 발명가 루이스 페류가 자동인간을 만든 것도 1900년도고요. 그 후 인간은 산업혁명과 디지털 혁명을 거치면서 100년 동안 정교한 자동화 기술을 갖기 위해 노력합니다. 덕분에 20세기 말 ‘이족보행 로봇의 태동기’를 맞이하지요.”
“1986년 혼다사가 이족보행 로봇 프로젝트를 시작한 거 말씀이시군요?”
서령이 아는 체를 하자 로봇MC 남이 끼어들었다.
“아니, 태어나기도 전의 일을 서령 씨가 어떻게 아세요?”
“<보노보>방송국 1층 로봇전시관에서 봤어요. 찰스가……, 아, 아니, 찰스 사장님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건데요. 혼다의 P-2 같은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한 것도 그때고, 소니의 큐리오, 카이스트의 휴보, 혼다의 아시모 같은 근사한 휴머노이드가 21세기 초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라면서요?”
“네, 맞습니다. 그 즈음 로봇들이 걷고 뛰고 춤출 수 있게 됐지만, 사실 그들의 머리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인공지능이 기계공학의 발달에 보조를 맞추지 못했다고나 할까요?”
“‘힘만 센 ‘돌쇠형 로봇’이 양산되던 시절이었네요. 로봇이 아니라 그냥 기계 덩어리로 취급하는 편이 옳지 않나요?”
“IBM의 체스 로봇 딥 블루가 전설적인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이기기도 했으니 기계 덩어리라고 간주할 순 없겠지요. 하지만 학습과 기억 능력은 뛰어난 반면 경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고 코딩된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스미스 박사가 오른손 검지를 들며 이야기를 이었다.
“제가 그 당시 인공지능의 수준을 알려주는 일화를 하나 소개할게요. 2002년 아메리카 대륙 어느 주에서 시범적으로 최신 로봇을 들여와 전기세 영수증을 처리하는 일을 맡겼대요. 주민들이 세금을 내면 확인해서 전산처리하는 로봇이었는데, 글쎄 이 로봇이 세금을 완납한 주민에게 세금 독촉 e메일을 자꾸 발송하더라는 거예요. 납부할 금액이 0원이라면서.”
“그래서 어떻게 했대요?”
서령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화가 난 주민들이 납부장에 0원이라고 큼지막하게 기입해서 다시 보냈대요. 그랬더니 그 로봇이 더는 독촉 e메일을 안 보내더라는 거예요.”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2049년형 바보로봇 개그였다.
“에이, 농담도 잘 하셔라. 그럼 도대체 언제부터 로봇이 인간과 유사한 지능을 갖게 된 겁니까?”
로봇MC 남이 스미스 박사에게 물었다.
“로봇 이족보행의 메카가 혼다와 도요타라면, 로봇 인공지능과 인공감성의 메카는 매사추세츠공대(MIT)와 카네기멜론대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뇌 작동 원리를 알고리듬화해서 로봇에게 넣어준 겁니다. 인간의 뇌가 베이시안 학습(Bayesian Machine learning·확률론을 바탕으로 현재 상황을 파악해서 적절한 반응을 선택하는 학습 방법)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2000년 초반이지요. 그것을 로봇 뇌에 그대로 넣어서 똑같은 자극에도 다양한 반응을 하도록 만들었고요, 로봇에게 ‘쾌락의 중추’를 장착하여 스스로 동기부여도 하고 답이 없는 문제에 창의적인 답을 제시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한 것이 2020년 즈음입니다.”
“로봇의 역사도 간단하지만은 않군요.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의 시대! 박사님께서는 그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보시나요?”
서령이 즉흥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특별시연합시회에서도 회피하는 민감한 문제를 건드린 것이다. 정녕 특별시의 주인이 바뀌고 있을까. 스미스 박사도 움찔 어깨를 떨었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답했다.
“아직은 아닙니다. 현재 로봇은 인간처럼 자의식을 갖고 있지도 않고, 기쁘거나 즐거운 감정 외에는 다른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죠. <보노보> 채널도 로봇에게 즐거움을 줄 뿐 그들을 슬프게 만들진 못하죠.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로봇 제조회사 경영자들이 일부러 그 기능을 로봇에게 넣지 않는 겁니다. 로봇에게 굳이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을 심어줄 까닭이 없으니까요.”
● 알립니다
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먼 시계공’은 지면 게재일 전날 오후
2시부터 동아일보 홈페이지(www.dongA.com)에서 미리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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