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들간 우열 존재’ 주장 반박
비글호 항해를 마치고 9개월 뒤인 1837년 7월 찰스 다윈은 ‘종간 변이(Transmutation of Species)’를 주제로 한 연구노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는 연구노트를 통해 진화론을 정리하며 핵심개념 하나를 그림으로 그렸다. 진화 패턴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완전히 바꿔 놓은 ‘생명의 나무(Tree of life)’였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와 더불어 다윈의 가장 큰 업적은 나무의 가지치기처럼 생명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데 있다. 생명의 역사는 새로운 종이 기존의 종으로부터 가지를 쳐온 과정인데, 오늘날 우리가 보는 생물들은 가지치기를 통해 말라 죽지 않고 살아남은 맨 끝 가지들이라는 것이다.
1859년 출간된 ‘종의 기원’에 실린 이 개념은 이전의 진화론이 제시한 진화 패턴과 비교해 혁명적인 것이었다.
다윈 이전 진화론에서 생물 진화의 패턴은 하등동물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고등동물로 진화해 간다는 ‘사다리 모형’이었다. 사다리 모형은 동물원 원숭이도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나무 모형’을 제시한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원숭이는 인간이 될 수 없다. 이미 인간과 원숭이라는 서로 다른 가지(종)로 갈라져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나무가 그려지면서 서로 다른 종들의 진화를 우열로 가리는 인식도 폐기된다. 나무 모형에 따르면 가지 끝에 있는 현존하는 모든 종들은 자신의 서식지에 잘 적응해 살고 있는 성공한 종들이기 때문. 장대익(과학기술학) 동덕여대 교수는 책 ‘다윈 & 페일리’에서 “진화 패턴에 대한 이해가 나무 모형으로 변화됨으로써 (인간은) 현 시점에 최고로 잘 적응한 종이 인간이라고 했던 오만방자함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