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원의 도쿄통신] 오구라와 스모협회의 전쟁

  • 입력 2009년 1월 19일 16시 23분


일본의 유명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오구라 토모아키(61)가 스모계를 향한 독한 발언으로 설화에 휘말렸다가 꼿꼿한 사죄로 정면 돌파를 시도해 원만한 ‘엔딩’을 엮어냈다.

인기 아이돌 그룹 ‘아라시’와 함께 니혼TV의 예능프로그램 ‘숙제군’의 진행도 맡고 있는 오구라는 후지TV의 아침정보 프로그램 ‘토구다네’를 통해 매일 시청자의 출근길 벗이 되고 있는 인물.

점잖고 편안한 입담으로 명성이 높은 그가 말꼬리를 톡톡히 잡힌 것은 지난 9일 ‘토구다네’에서 던진 한마디에서 비롯했다.

이날 그는 화제 거리인 몽골 출신의 요코즈나(한국의 천하장사) 아사쇼류에 대한 내용을 다루면서 “승리를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라는 토를 달았다. 지난해 승부조작 의혹으로 법정시비에까지 휘말린 일본 스모계를 상기시키는 독설의 농담이었다.

그 발언은 스모계의 심기를 건드렸고 12일 방송에서 오구라가 장장 7분의 시간을 들여 열변을 토하는 공개적인 소동으로 번졌다.

일본 스모협회는 문제의 발언이 방송을 탄 직후 ‘토쿠다네’의 프로듀서를 소환해 항의했다. “제대로 사과하지 않으면 향후 스모협회 관할의 영상 등을 후지TV에 제공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오구라 토모아키의 7분 연설은 자신의 발언이 스모협회에 요코즈나 아사쇼류한테 폐를 끼쳤다면 사과한다는 내용을 서두에 내걸었지만 실수에서 빚어진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식의 해명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는 스모협회의 항의 과정 및 내용을 상세하게 공개하는가 하면 10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늘 자신의 스타일대로 소신껏 발언해왔다고 당당함을 피력하기도 했다. 심지어 “더 이상 문제가 커진다면 프로그램을 그만둬도 상관없다”고 강한 펀치를 날리기도 했다.

머리 숙여 공손하게 사과하되 도도하고 깔끔하게 자존심을 지킨 이날의 열변은 스모협회가 사과를 받아들이고 오구라는 계속 진행석에 앉는 방향으로 원만히 봉합됐다.

후지TV 계열의 신문은 사죄했다는 점에 포커스를 맞춘 반면 그 밖의 신문들은 ‘시비조의 사죄’라는 등 자극적으로 분란을 부추기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절묘한 균형을 취한 오구라의 뻣뻣한 사죄는 말이 때로는 화근의 불씨가 되지만 불을 잠재우는 능력도 가졌음을 알렸다.

도쿄 | 조재원

스포츠전문지 연예기자로 활동하다 일본 대중문화에 빠져 일본 유학에 나섰다.

우리와 가까우면서도 어떤 때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일본인들을 대중문화라는 프리즘을 통해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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