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데 어딘지 익숙하다. 다양한 형태로 정교하게 만든 유리 오브제 안에 빨강, 노랑, 우윳빛 액체가 담겨 있고,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흰색 오브제들은 좌대 위에 놓여 있다. 잠시 보니 짐작이 간다. 우리 몸속의 장기와 뼈, 피를 상징하는 조각이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3월 1일까지 열리는 벨기에 작가 로랑스 데르보(47)의 개인전은 탄생과 소멸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을 들려준다. 몸속의 내장과 피, 갈비뼈를, 부서지기 쉬운 유리와 도자기를 이용해 만들어낸 그의 작업은 그리 엽기적이지 않다. 생명의 핵심 요소를 미학적으로 접근하고 매혹적인 오브제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특히 ‘37분 동안 인체에서 축출된 혈액의 양’ 등 색다른 제목이 붙은 유리탑 작품들의 경우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신성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강인하면서도 때론 위태로운 생명의 신비, 그 유한함과 영원성을 새삼 돌아보게 하는 전시다. 02-544-7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