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 풍속 이야기 20선]<6>사라져가는 우리의 오일장을 찾아서

  • 입력 2009년 1월 29일 02시 58분


《“아무리 정기시장을 연구해 온 학자들이 오일장을 두고 그 지역사회 문화를 옹골차게 담고 있는 현장이라고 주장해도, 오일장에 낯설었던 우리에게는 그 말이 마음 깊은 곳까지 다가오지 않았다. 반대로 ‘오일장은 재미없고 역동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더 짙게 다가왔다. 그래도 우리에게 ‘오일장 찾는 작업’을 계속하도록 독려했던 것은 ‘오일장이 사라지고 있다’는 뚜렷한 사실 때문이었다.”》

축제와 여론마당, 시끌벅적 5일장

이 책은 1993년 5월에서 1995년 2월 사이 열렸던 한국의 오일장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같다. 모두 4권으로 구성된 책은 각 지역의 오일장을 중심으로 해당 지역의 역사와 문화, 생활 형태와 사람들의 삶, 특산물과 별미 음식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들은 서강대 사학과 출신 동기 3명으로, 당초 땅과 사람에 대한 이해를 위해 지역문화를 찾아다닐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 지역문화의 집산처(集散處)이며 반영처가 오일장 속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필 작업의 행로를 바꾼다. 첫해 경기, 충남, 충북 정도만 돌아다니자고 결심했던 저자는 출판사 사장의 권유로 이듬해부터는 아예 장돌뱅이처럼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때 맞춰 나오는 배추 무 등의 채소들이 장터의 앞길을 차지하는 나주장터부터 남대문시장(서울), 국제시장(부산), 서문시장(대구)과 같은 역할을 하는 전북 전주의 남쪽 관문 풍남문에 있는 남문시장, 제주십경의 하나인 ‘사라낙조’를 만끽할 수 있는 제주장…. 팔도를 유람한 저자는 전국 곳곳에서 열리는 오일장의 사소한 풍경도 놓치지 않았다. 살아있는 현장의 소리를 들려준 장꾼들과 나물 한 움큼을 더 팔기 위해 각박한 생업 전선에 뛰어든 할머니들의 목소리도 담겼다.

저자의 말처럼 전통사회에서 오일장은 일상의 생활 리듬을 좌지우지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생활의 터전이었다. 지금처럼 7일을 1주일로 여기지 않았던 옛날 사람들은 장날을 휴일로 여겼다는 것.

장날은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흥을 돋우는 씨름판이 열리거나 놀이꾼들이 모여들었기에 자연스러운 축제날이 됐다. 안면을 익히고 혼담을 교환하는 혼인권(婚姻圈)이기도 했다. 사회 문제와 관련한 집회를 열어 여론을 형성하는 마당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오일장은 “무시(無市·장이 없는)날에도 장이 선다”는 말처럼 존재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저자들은 입을 모은다. 저자는 특히 한국산이 아닌 외국 농산물이 버젓이 등장하는 오늘날 시장의 풍경에 더욱 속상해한다.

이들은 “구한말 일본의 경제 침략이 맨 먼저 사람들의 눈에 띄었던 곳도 장터였다”며 “그동안 없었던 일본 상품이 난데없이 우리 장터에 등장했고 이를 통해 당시 조선인들은 일본의 침략 야욕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단순히 오일장의 풍경이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기대했던 저자들은 1000년 넘게 이어져 오면서 선조들의 삶이 깃든 오일장을 1990년대 시점에서 마지막으로 기록하는 작업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 책은 14년 전에 처음 나왔다.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들이 이제는 희미해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읽는 인상을 주지만, 오일장이 사라진 현실에 오일장의 현장을 기록했다는 저자의 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염희진 기자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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