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사랑은 □이다”… 연극-뮤지컬 네 편 눈길

  • 입력 2009년 1월 29일 02시 58분


《사랑은 어떤 맛일까. 열애 중인 사람에게 사랑은 밀크셰이크처럼 달콤한 맛. 하지만 실연한 사람에게 사랑은 소주보다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이도 저도 아닌 오랫동안 연애에 굶주린 사람이라면? 사랑은 기억조차 희미한 무색무취 아닐까. 2009년 겨울 사랑을 주제로 한 연극과 뮤지컬 네 편이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사랑을 핑크빛 환상만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 뮤지컬 ‘카페인’…사랑은 ‘아이리시 커피’다

세진과 지민은 극과 극이다. 바리스타(커피전문가) 세진은 이전 남자들에게 늘 끝에서 두 번째 여자였다. 그들은 세진과 헤어지면 꼭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소믈리에(와인전문가) 지민은 “여자는 와인”이라고 여기는 바람둥이. 여자 나이는 빈티지로, 몸매는 와인 병 모양으로 기억하는 남자다. 사랑은 세진에게 “허상이자 끝없는 사막이요, 깨지기 쉬운 것”이지만 지민에게는 “아름다운 허상이자 사막 속 오아시스에 붙이기도 쉬운 것”이다.

커피와 위스키가 섞인 아이리시 커피처럼 두 남녀가 티격태격하며 서로에게 녹아드는 과정이 사랑스럽다. 막 서로의 다른 점을 발견하기 시작한 초보 연인들이 볼만하다. 임철형 구원영 김태한 난아 씨 출연. 2월 28일까지 서울 대학로 라이브극장. 02-742-9005

○ 뮤지컬 ‘라스트파이브이어스’…사랑은 ‘다르게 적힌다’

소설가 제이미와 배우 지망생 캐서린은 한때 열렬히 사랑해 결혼했으나 헤어졌다. 배우 오디션에서 번번이 떨어진 캐서린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고, 제이미는 그런 캐서린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다. 극중에서는 만남과 이별의 과정이 각자의 다른 기억으로 재구성된다. 남자의 시간은 캐서린을 처음 만나던 순간에서 이혼한 현재로 가고, 여자의 시간은 역순으로 지난 사랑을 추억한다. 둘이 대면하는 장면은 오직 한 순간, 결혼식에서다.

극의 후반 사랑에 빠진 여자가 외치는 ‘안녕’과 헤어진 뒤 남자가 말하는 ‘안녕’의 의미가 너무 달라 가슴이 저릿해진다. 얼마 전 헤어져 우울한 솔로 혹은 ‘돌아온 싱글’에게 권한다. 이건명 배해선 양준모 김아선 씨 출연. 2월 22일까지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 1544-1555

○ 연극 ‘돌아서서 떠나라’…사랑은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단순해도 따뜻한 ‘조폭’ 상두와 되바라져도 얄밉지 않은 의사 희주의 만남과 이별….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놓아줘야 하는 둘에게 ‘만남은 운명이지만 헤어짐은 의지’였다. 영화 ‘약속’, 드라마 ‘연인’의 원작이 된 연극을 다시 보는 묘미는 곱씹을수록 맛을 더해가는 대사들에 있다. “다른 여자 만나는 것만 배신이 아니야, 니 마음에서 나를 제쳐놓는 것도 배신이야”라는 희주의 절절한 대사와 “죄가 깊으면 은혜도 깊다. 큰 죄를 지었기에 다행히 큰 뉘우침이 있었다”는 상두의 뒤늦은 깨달음이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돋보인다.

후회하지 않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는 오래된 연인들에 제격이다. 유오성 진경 송선미 씨 출연. 3월 8일까지 서울 대학로 윈더스페이스 네모극장. 02-762-9190

○ 연극 ‘클로저’…사랑은 ‘잔인한 거짓말’이다

부고 담당 기자 대현은 출근길 택시에 치여 쓰러진 전직 스트리퍼 수빈과 사랑에 빠진다. 대현은 수빈의 인생을 소설로 써 데뷔하고 책 표지 사진을 찍기 위해 만난 사진작가 태희와 첫눈에 반한다. 피부과 전문의 운학은 대현의 장난으로 태희를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이 작품은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 그 이면에 얽혀 있는 배신 질투 거짓말 욕망 의심에 관한 연극이다. 현재의 사랑뿐 아니라 사랑했던 과거의 기억까지 헤집으면서 사랑을 냉정하게 해석한다. 운학과 잠자리를 했느냐고 끊임없이 묻는 대현에게 수빈이 헤어지자며 하는 말, “어딨어, 그 사랑이라는 거?”가 기억에 남는다. 사랑에 대해 냉정한 솔로라면 공감할 만하다. 정보석 이항나 데니안 씨 출연. 2월 8일까지 서울 대학로 SM아트홀. 02-764-8760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