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적벽대전’ 영웅들 모습에 ‘첩혈쌍웅’의 그림자가…

  • 입력 2009년 1월 30일 15시 47분


◆영웅의 귀환…'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

(박제균 앵커) 영화시장에서 설 연휴는 쟁쟁한 대작들이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는 새해 첫 결전장입니다. 한국영화 '유감스러운 도시', 중국영화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 미국영화 '발키리'가 '설날 삼국지'를 벌였습니다.

(김현수 앵커) 한국의 조폭 코미디, 우위썬 감독의 대하사극, 슈퍼스타 톰 크루즈 등 각 영화의 키워드가 뚜렷했습니다. 문화부 영화팀 손택균 기자가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손 기자, 어떤 영화가 이번 설의 승자였나요?

(손택균 기자) 예. 승리는 '적벽대전2: 최후의 결전'이 차지했습니다. 이 영화의 배급사인 쇼박스는 설 연휴였던 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 동안 전국 104만2000명의 관객을 모았다고 밝혔습니다. 오늘 오전 집계된 영화진흥위원회 예매현황에서도 '적벽대전2'는 25%가 넘는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는데요. 이번 주말 관객 수 200만 명 선을 무난히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앵커) 적벽대전 1편은 기대에 비해서 영화가 전하는 감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았죠?

(손택균) 맞습니다. '본격적인 전투를 막 시작한다 싶더니 엔딩 크레딧을 올려버린다'는 비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적벽대전2'는 1편에 실망한 관객을 위안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적벽대전2' 후반부 40분 넘게 이어지는 장대한 전투 장면은 왜 이 영화에 8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듭니다. 원작인 '삼국지연의' 이야기의 큰 틀을 깨지 않으면서 익숙한 영웅담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한 것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그 과정에서 관우 장비 조운 등 쟁쟁한 장수들은 자연스럽게 배경 속으로 물러납니다.

(김앵커) 삼국지 하면 관우 장비의 용맹과 제갈량의 책략이 먼저 떠오르는데… 뜻밖이네요.

(손택균) 그렇죠. 지금까지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숱하게 만들어진 드라마와 영화들은 대개 관우 장비 등 장수들의 화려한 무예를 앞세웠습니다. 하지만 이 '적벽대전2'에는 창칼 한번 휘둘러서 병졸 수백 명을 몰살하는 슈퍼맨 관우 장비 조운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이 '영웅본색'과 '첩혈쌍웅'을 만든 우위썬이라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량차오웨이가 연기한 주유는 영화 말미에서 "이 전쟁에 승자는 없다!"고 외치는데요. 전쟁에 대한 감독의 가치관을 뚜렷이 반영한 장면입니다.

(박앵커) 널리 알려진 원작의 주요 캐릭터 매력은 상대적으로 약하겠네요?

(손택균) 그렇지는 않습니다. 조조, 손권, 유비 등 원작의 주역들도 관습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생기를 찾았습니다. 주유의 화공 한방에 천방지축 도망쳤던 삼국지 연의 속 조조는 이 영화에 없습니다. 역사의 추를 짊어지고 서서히 부패해 갔던 천재의 고뇌가 인상적으로 그려집니다. 실제로 조조는 뛰어난 문장가였죠. 적벽대전을 앞두고 그가 읊은 것으로 알려진 시 '단가행'은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과 교차 편집돼 '적벽대전2'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주유도 문무 겸비한 '훈남' 캐릭터로 복권됐습니다. 원작소설에서 주유는 제갈량과 대립하는 열등감 덩어리로 묘사됐었죠. 물론 인기스타 량차오웨이의 매력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미남배우 진청우가 연기한 제갈량은 기이한 도술을 부리는 소설과 달리 자연현상을 세심하게 관찰해서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현실적 수재로 빚어졌습니다.

우위썬 감독은 적벽대전 후 적으로 맞서는 제갈량과 주유의 관계에 '첩혈쌍웅'의 저우룬파와 이수현이 나눴던 미묘한 애증을 오버랩 시켰습니다.

(김 앵커)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흠은 있을 텐데, 아쉬운 점은 없나요?

(손택균) 워낙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다 보니 쟁쟁한 배우들이 연기력과 매력을 뚜렷이 드러나지 못했습니다. 후반부 갑작스런 몇 가지 반전에서는 정해진 대로 이야기를 끝맺기 위해 무리하게 비약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벽대전2'는 장풍을 쏘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황당무계한 무협영화와는 다릅니다. 두 발을 땅에 디딘 인간들의 가슴 뜨거운 이야기죠. 할리우드 진출 이후 특유의 비장미를 잃어가는 것으로 보였던 우위썬 감독은 필생의 역작이라고 스스로 밝힌 이 영화에서 특유의 빛깔을 찾았습니다.

(박앵커) 손 기자,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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