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프랑스의 대표적 문호 빅토르 위고의 작품을 영국의 문화상품으로 바꿔 놨다.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은 그에 대한 응수라 할 만하다. 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프랑스 국기의 삼색 빛깔로 물들여놨으니.
1월 29일부터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공연을 펼치고 있는 이 뮤지컬은 ‘로메오 에 쥘리엣’이라 불러야 할 만큼 프랑스적 요소가 가득하다. 줄리엣의 가문인 케플렛가 사람들에 빨강, 로미오의 가문인 머큐쇼가 사람들에게 파랑을 부여하더니 두 가문의 사람이 뒤섞이는 가면무도회에선 흰색을 택했다.
서두를 장식하는 남녀의 서정적 내레이션은 샹송 ‘모나코’를 연상시키는 목소리를 타고 프랑스어의 매력을 마음껏 과시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중창 ‘사랑한다는 것’과 로미오와 친구인 머큐쇼, 벤볼리오의 삼중창 ‘세상의 왕들’ 등은 달콤한 샹송의 선율과 강렬한 록 비트가 배합된 ‘프렌치 팝 콘서트’의 느낌을 안겨준다. 노래와 춤을 분리해 전문화한 프랑스 뮤지컬의 특징도 뚜렷하다.
원작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도 프랑스답다. 뮤지컬은 원작의 조역들을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로 재창조했다. 두 가문의 어머니와 유모는 남성중심주의의 희생자이자 고발자로 등장한다. 부모의 잘못된 교육으로 반항아가 된 티볼트와 로미오 줄리엣의 죽음 이후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로렌스 신부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부여받았다.
전반에 강렬한 죽음의 향기를 부여한 연출도 눈에 띈다. 4명의 청춘남녀가 죽음을 맞는 극의 비극성을 부각하기 위해 그들 주변을 맴돌며 그로테스크한 춤을 추는 ‘죽음’이나 사랑의 파국을 경고하는 ‘시인’은 일부러 관객의 몰입을 차단하는 브레히트적 장치다.
로미오 역의 다미앙 사르그와 줄리엣 역의 조이 에스텔 간 사랑 연기에서 화학적 상승작용을 찾기 어려운 점은 아쉽다. 무대 위 세트를 배우들이 직접 밀고 다니는 것도 불편하다.
그래도 2007년 공연과 비교했을 때 프랑스 현지공연의 일부가 빠져 아쉽다는 반응은 빠른 극전개로 오히려 관객 친화성을 높였다는 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런 호평도 3일 공연이 배우들의 출연료 정산문제로 공연 20분 전 돌연 취소돼 환불소동이 벌어지면서 빛이 바랬다. 주관사인 지에스이엔티가 약속한 출연료를 제때 지급하지 않자 배우들이 보이콧을 벌인 것이다. 4일 공연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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