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보니 다시 보이는 세상… 진정한 내면의 글 쓸 것 같아”

  • 입력 2009년 2월 6일 02시 58분


암수술 7개월만에 집필 재개 소설가 최인호 씨

지난해 6월 침샘암 수술을 받고 통원 치료 중인 소설가 최인호(64) 씨를 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집필실에서 만났다. 책장 두어 개와 널찍한 책상 하나로 단출하게 꾸며진 집필실 안은 채광창을 통해 들어온 포근한 햇살이 드리워져 있었다. 수술 이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작가는 6∼7kg 정도 살이 빠진 것 외에는 생활에 큰 불편이 없을 만큼 회복된 듯했다.

“몸이 많이 좋아졌고 하루 한두 시간씩 꾸준히 등산도 하고 있다”는 작가의 책상 한쪽에는 최근 출간된 문학계간지, 서적 10여 권이 쌓여 있었다. 지난해 8월 암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연작소설 ‘가족’ 연재를 중단했던 그는 최근 다시 집필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체의 인터뷰를 고사한 탓에 친한 지인들끼리 만나는 자리를 쫓아 어렵게 자리한 기자에게 그는 망설이며 ‘2009년 1월 29일, 가족’이란 제목이 쓰인 원고를 보여주었다.

10일경 나올 월간 ‘샘터’ 3월호에 수록될 이 글에서 작가는 10시간에 걸친 대수술과 뒤이어진 약물·방사선 치료를 통해 “무자비한 욕망의 한계를 깨닫게 하고 사람을 더욱 깊고 강하게 만드는 병의 은총”을 깨닫게 된 경험을 털어놓았다.

“요즘에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건강에 대한 문안인사이다…사정이 이렇게 된 데에는 지난 6개월간 내가 병환으로 어쩔 수 없이 환자노릇을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시작된 이 글에서 최 씨는 “처음 의사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고 암 선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지금까지 몸에 칼을 대본 것은 포경수술을 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정도로 몸은 튼튼했다”며 “병원은 자주 갈 데가 못 되는 재수 없는 곳, 운이 나쁜 사람들이나 가는 저주받은 곳,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이 격리되는 감옥과 같은 수용소로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내가 막상 환자로서 병원을 출입하게 되니…아아 세상에는 참 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병실에서, 복도에서 환자들을 만나면 가슴속 깊이 칼로 찌르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끼며 절로 울면서 고개를 숙이고 다니곤 했었다. 왜 이렇게 병에 걸린 사람이 많은 것일까. 이제야 알겠으니…나는 글쟁이로서 지금까지 뭔가 아는 척 떠들고 글을 쓰고 도통한 척 폼을 잡았지만 한갓 공염불을 외우는 앵무새에 불과했었구나.”

수술 후 입술이 마비됐기에 어느 날 산새를 보고 무심코 휘파람을 불게 된 작은 일에서도 “봄이 오듯이 내 입술도 어느덧 마비가 풀려 새봄의 휘파람을 불고 있구나”라고 감사함을 느끼게 된 그는 암 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 김점선 화백에게도 격려를 보내며 글을 마무리 했다.

“아프지 말거라. 이 땅의 아이들아, 내 누이들, 내 어머니. 그리고 이해인, 김점선아. 이제 그만 일어나 나오거라. 창밖을 보아라. 새봄이 일어서고 있다.”

작가는 “병이 생기고 보니 세상이 다시 보이더라. 로켓이 발사될 때 왜 3단계 추진을 거치는지 알 것 같다”며 “이제야 제대로 한 번 (작품 활동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누군가 볼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 왔지만 지금부터는 내 스스로 진심으로 즐겁고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나도 이제 (세인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삼수갑산(三水甲山)으로 떠나야 한다”고 하는 작가에게 결례가 될 것을 무릅쓰고 궁금해할 독자들을 위해 그의 근황을 전한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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