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간 2만7866명 수강… 올해는 작년의 2배
‘발원문 특강’엔 교수 등 문화재 관계자 몰려
5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낙원동 낙원빌딩 411호 전통문화연구회. 20평 남짓한 강의실을 50여 명의 학생이 가득 메우자 신승운(문헌정보학) 성균관대 교수가 강의를 시작했다.
사서삼경 강독이나 천자문 교습과 사뭇 다른 이 강의는 문화재를 다루는 미술사 전공자를 위해 개설된 ‘미술사 자료 강독’이다. 동양고전 번역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문교육을 해온 전통문화연구회가 지난달 국내 처음 개설한 발원문 번역 강의다.
문화재 연구자들에게 이 강의는 특별하다. 불상과 종, 탑, 묘의 조형물을 건축·수리한 이력과 배경을 상세하게 적은 발원문 번역은 학자를 초빙해 ‘그룹과외’를 받는 것 외에 배울 기회가 사실상 없었기 때문. 이두(吏讀)가 섞여 있는 데다 일반적인 한문 원전 번역과는 문법체계가 달라 이를 번역할 수 있는 학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발원문 번역의 중요성은 지난달 전북 익산의 미륵사 창건과 관련된 연구에서도 드러났다. 백제 무왕 때 지어진 미륵사가 당초 알려진 선화공주가 아닌 백제 귀족의 딸인 백제 왕후에 의해 창건됐다는 연구 결과는 미륵사지석탑에서 나온 발원문 ‘금제사리봉안기’를 해석한 덕분이다.
이번 강의는 학계의 요청으로 개설됐다.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덕성여대 최성은 교수 등 미술사학계에서 전통문화연구회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신 교수에게 후학들을 위해 강의를 부탁한 것이다.
직접 강의를 듣는 최 교수는 “저도 미술사를 전공하며 30년 동안 나름대로 한문을 공부해왔지만 이런 강의를 들을 기회는 찾을 수 없었다”며 “이 강의는 문화재를 다루는 후학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제게도 귀중한 배움의 기회”라고 했다.
조계종을 비롯한 불교종단의 여러 조각상을 만든 불교 미술가이자 동국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이상배(56) 씨, 고려대 미술사대학원 주수완(39·박사과정) 씨를 비롯해 서울대 홍익대 덕성여대 등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 교수와 문화재 연구자 54명이 매주 목요일 2시간 반 동안 이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
이번 강의는 전통문화연구회에도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1988년 전통문화연구회가 출범하면서 그해 7월 첫 강의를 시작한 고전연수원 강좌가 100기(1∼2월)를 맞아 개설한 특강이기 때문이다.
고전연수원 강좌는 신 교수를 비롯해 금장태 서울대 교수와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정태현 한국고전번역원 명예교수 등이 이끌어왔으며 초급 천자문부터 논어·맹자·대학·중용, 주역과 노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강의를 해왔다.
신 교수는 “어린 학생부터 대학생, 대학원생과 현직 교수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의 중역과 고급공무원, 국회의원까지 100기를 맞는 동안 다양한 사람이 거쳐 갔다”고 했다. 지금까지 강의실을 찾은 수강생은 모두 2만7866명이다.
특히 최근 들어 수강생이 급증하고 있다. 이번 100기에 등록한 인원은 566명. 고전연수원 강좌 사상 최고다. 지난해 같은 기간 281명의 2배를 넘는다. 연구회의 함명숙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소홀히 했던 한문과 고전의 중요성을 깨닫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라고 했다.
3월부터 시작되는 101기 강좌 일정과 과목별 수강료 등은 연구회 웹사이트(www.juntong.or.kr) 참조. 02-762-8401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