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중인 숭례문… 지금 만나러 갑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11일 02시 57분



■ 화재 1년… 복구현장 공개

“꼭 완치돼 우리 마음도 치유해다오”

전국 각지서 5800명 몰려들어 종일 장사진

희망 메시지 게시판에 ‘복원 성공’ 염원 빼곡


개방 30분 전인 10일 오전 10시 반. 전북 전주시에서 새벽차를 타고 온 정미진(22·대학생) 씨를 비롯해 문이 열리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줄이 이미 100여 m에 달했다. 이 줄은 개방이 시작된 오전 11시 이후 300m 넘게 이어졌고 종일 장사진을 이뤘다.

국보 1호 숭례문 화재 1주년을 맞은 10일, 문화재청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6시간 동안 숭례문 복구 현장을 공개했다. 숭례문이 화마의 상흔을 지워가는 모습을 시민들에게 보여주자는 취지다.

문화재청 최종덕 건축문화재과장은 “3000여 명의 시민이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으나 이날 숭례문을 찾은 사람은 5800여 명에 달했다. 문화재청은 1회 입장 인원을 40명, 관람 시간은 10∼20분으로 제한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문화재청 직원 50여 명이 곳곳에서 안내했다.

이곳을 찾은 이들은 숭례문 앞에 마련한 ‘희망 메시지’ 게시판에 한결같이 숭례문의 장한 모습을 기대하는 바람을 적은 편지를 빼곡히 붙였다.

“숭례문아 하루빨리 너의 장한 모습 보고 싶구나.” “벌써 1년이 되었구나. 지금은 치료 중이니 잘 고쳐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자.” “숭례문이 원래대로 웅장하고 당당하게 복원돼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치유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문화재청은 이날 톱으로 나무 부재(部材·건축물의 뼈대를 이루는 재료)를 다듬는 시범을 보이고 불탄 부재 일부, 옛 숭례문의 사진, 자귀와 톱 등 전통 건축 도구를 전시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도 지난해 11월 숭례문 일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조선 후기의 도로, 주거지 흔적을 선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이 순식간에 타버렸으니…. 이럴 수가 있나, 이럴 수가 있나….” 이날 첫 번째 관람객 중 한 명인 이강춘(70·서울 노원구 상계동) 씨는 숭례문의 화재 전후 사진을 번갈아 보며 혀를 찼다.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그래도 석축이 살아 다행이에요. 누각도 1층은 별로 타지 않았네.”

두 손을 꼭 잡고 숭례문을 찾은 김영곤(66·서울 송파구 석촌동) 신한순(59) 씨 부부는 2006년 숭례문 개방 이후 화재 전까지 한 달에 한 번씩 숭례문에 왔다며 불탄 뒤 아린 가슴으로 처음 찾은 숭례문은 생각보다 많이 살아 있었다고 말했다.

보는 시간이 길지 않았는데도 지방에서 올라온 어머니와 딸,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를 비롯한 관람객들은 숭례문을 가슴에 담고 가겠다는 듯 구석구석을 보고 또 봤다. 일찍 서울행 버스에 오른 정미진 씨는 “숭례문이 복구되면 무작정 개방하기보다 보존에 더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딸 우은정(20·대학생) 씨와 함께 대전에서 온 정복경(47) 씨는 “예전에는 그저 ‘숭례문이 이 자리에 있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화재 이후 어떤 문화재보다 더 각별해졌다”고 말했다. 우 씨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숭례문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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