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고광석’ 씨에게 보내는 편지
안녕하세요, 배우 고광석 씨.
광석 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올해 초 대학로 게릴라소극장에 올라간 창작뮤지컬 ‘울고 있는 저 여자’에서였습니다. 그 작품의 주인공인 백수 청년이 자기 못지않게 불쌍한 대학친구가 있다면서 광석 씨의 이야기를 들려주더군요.
두꺼운 안경을 끼고 이공계 원서를 읽던 ‘범생이’ 친구가 졸업을 앞두고 연극이 좋다고 연극판에 뛰어들었다고. ‘미쳤느냐’며 자신부터 뜯어말렸는데도 소용이 없었다고. 그런 광석 씨가 어느 날 주연으로 출연하게 됐다며 티켓 2장을 쥐여줘 연극을 보러갔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
전 생각했죠. 아, ‘밥’보다 ‘꿈’을 택해 성공한 광석 씨가 참 부러웠겠구나. 그런데 웬걸요. 동료 여배우와 결혼한 광석 씨가 어느 날 술좌석이 끝나고 헤어지려는데 딱 두 마디를 건넸다고요.
“돈 좀 주라. 애 분유 못 먹인지 열흘 됐다.”
그 말에 호주머니에 있던 1000원짜리까지 톡톡 털어주고 나왔다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복잡한 심정이 됐습니다. 광석 씨가 이런 말도 남겼다고 하더군요.
“이걸 하나, 마나? 해, 말아? 하면 애가 울고, 안 하면 내가 운다.”
며칠 후 ‘연극열전2’ 폐막행사에서 또 다른 광석 씨를 만났습니다. 연극열전 8편의 작품에서 가장 많은 배역을 소화해 ‘멀티맨상’을 수상한 배우 김원해 씨였습니다. 두 딸을 둔 마흔을 넘긴 가장이라고 한 그는 ‘오늘도 일 안 나가느냐’는 아내의 눈총을 피해 PC방을 전전해 왔다는데 연극열전 덕택에 출근할 곳이 생겨 행복했다고 말했습니다.
‘난타’의 원년 멤버인 그는 “너무 쉽게 꿈과 현실을 바꾼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정된 수입을 보장받던 ‘난타’를 포기하고 2006년 연극판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아내는 “진작부터 그런 말 꺼낼 줄 알았다”며 전업주부 생활을 접고 자동차영업사원으로 나섰다고 합니다. 그래도 연극은 형극과 같았습니다. 유가환급분을 받으라며 국세청이 보내온 자료에는 2007년 그의 소득이 176만 원으로 찍혀 있었다고 합니다. 원해 씨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멋있게 말하면 꿈을 좇는 것이고 냉정히 말하면 ‘배운 게 도둑질’인 셈이죠. 어차피 가야 할 길 힘들더라도 한발 한발 인내를 갖고 가겠습니다.”
올해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엄효섭 씨에게도 광석 씨가 숨어 있더군요. 1990년 뮤지컬 ‘캣츠’의 단역 배우로 출발한 그는 단역과 조연을 전전하면서 19년을 버틴 끝에 연기인생의 화려한 꽃을 피웠습니다. 10년 전쯤 배우를 그만두려는 그를 연출가 박근형 씨가 붙잡고 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넌 보석이다. 다만 흙 속에 덮여 있을 뿐이다. 흙이 걷히고 빛을 만나면 빛나는 보석이 될 테니 조금만 더 참아봐라.”
그 말에 힘입어 배역이 없을 때는 등산을 하며 다시 5년을 버텼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에 도달해 2005년 연극을 접고 인척이 운영하는 울산공장으로 내려가기로 결심하고 혼자 정동진 해돋이를 보러 갔는데 전화가 걸려왔다고 합니다. 영화 ‘로망스’에 캐스팅하겠다는 연락이었다고 합니다. 광석 씨, 힘겨운 시간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당신에겐 더욱 눈물겨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당신의 연기와 연극보다 더 연극 같은 인생 이야기를 지켜보며 우리가 힘을 얻는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인생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당신입니다.
:고광석:
뮤지컬 ‘울고있는 저 여자’에 나오는 가공의 인물.
가난한 연극배우의 전형.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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