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25세에 독일로 유학을 떠나면서 음악수업을 시작했지만 3년 만에 만하임대 음대 대학원을 수석 졸업하고 하겐, 다름슈타트, 하노버 오페라극장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했다. 2006년 하노버 오페라극장 수석상임지휘자로 발탁된 그는 2008년 오페라 ‘카르멘’ 공연 이후 단원들로부터 ‘마에스트로 구’로 불렸다.
음악의 완성도에 대한 고집도 드라마의 ‘강마에’(김명민)와 닮았다. 음악적 완성도를 훼손할 수 없다는 이유로 다름슈타트극장의 재계약 제의를 뿌리쳤고 하노버극장과는 위약금을 물면서 2년 연장계약을 파기했다. 올해 마흔이 된 그를 9일 덕수궁 돌담길에서 만났다.
“독일에서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면서 ‘강마에’가 부러웠습니다. 최고 수준의 독일 음악시스템을 한국에 접목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한국 청중과 교감할 수 있다는 점이 부러웠습니다. 예술을 위한 예술을 생각한다면 독일이 최고지만 인간을 위한 예술을 생각하면 모국만 한 곳이 또 있겠습니까.”
광주시향의 초빙 제안을 받고 2월 초 귀국한 그는 먼저 광주시향 단원들과 다양한 장르의 8곡을 놓고 워크숍을 가졌다. 단원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안겨주자는 생각으로.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남도 사람들의 피에 예술적인 뭔가가 흐른다는 말이 이해되더군요. 독일의 정상급 오케스트라에는 못 미치지만 제가 원하는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금방 만들어내는 거예요. 아, 이 정도면 함께 해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점이 어떤 것이냐고 물어봤다. 아직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면서도 “일단 결혼하면 배우자의 약점은 노출하지 않는 법”이라며 ‘내 단원’을 아끼는 모습도 강마에를 닮았다. 15년간 독일에서 터득한 노하우를 접목할 도시가 광주라는 점도 그를 매료시켰다.
철학도 출신인 그는 독일 철학자 칸트의 대표 3부작에 비견해 자신의 음악적 성장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순수이성비판’이 ‘정말 할 수 있을까’ 하는 ‘can’의 문제를, ‘실천이상비판’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must’를 다룬다면 마지막 ‘판단력 비판’은 ‘무엇을 해도 되는가’ 하는 ‘may’의 문제를 다룬다고 봤다.
“젊은 시절 내 음악적 재능을 놓고 can과 관련된 고민과, 조국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느냐 하는 must의 문제를 놓고 씨름했습니다. 마흔이 되면서 그 두 가지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서 제 음악적 해석을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가 하는 may를 고민하는 단계가 됐습니다. 광주시향과 함께 그 고민을 풀어가고 싶습니다.”
그는 우선 올 한 해 가장 대중적인 작품들로 관객의 저변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코믹 연주회를 펼치거나 문화적 소외층을 연주회장으로 초청하고, 대학축제 현장 등에 ‘찾아가는 연주회’를 펼칠 계획이다. 같은 곡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해 연주할 수 있는지 직접 들려주는 교육방송 특강도 시도할 생각이다.
한동안 가족이 있는 하노버와 광주를 오가며 광주시향을 이끌어야 할 그에겐 만만치 않은 구상들이다. 내년에는 지방선거도 있다. 과연 그의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까. 어쩌면 드라마 속 강마에처럼 관료주의의 벽에 부딪혀 다시 독일행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까.
그는 “광주가 나를 택한 이유 중 하나가 국내 음악계와 연고가 없어 소신껏 일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라며 “(독일행을 놓고 고민하는) 뒷모습만은 강마에를 닮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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