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하고 고운 오방색이 마음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것 같다. 천연재료로 염색한 한지의 매혹적 색감이 마법을 부린 듯, 미술관 벽을 채울 만큼 거대한 작업이 억지스럽지 않고 편안하다.
3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정종미 씨(52·고려대 교수)의 ‘역사 속의 종이부인’전. 선덕여왕, 신사임당, 허난설헌, 논개, 명성황후 등 역사적 여인들에게 콩즙과 들기름을 이용한 전통 채색 표현, 여성의 손길과 숨결이 담긴 재료를 활용한 콜라주 기법으로 생명을 부여한 전시다.
5년 동안의 작업을 총결산하는 이 전시에서 작가는 한지에 대한 치열한 연구와 탐색 끝에 우리 기억 속에 축적된 자연의 색을 되살리고자 노력했다. 그는 “미국에서 종이공방을 다니며 전 세계 종이를 다 접했지만 한국 종이가 가장 질겼다”며 “강인한 근성, 깊고 후덕한 포용력 등 한지의 물성과 한국 여성의 성향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종이부인 시리즈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모든 어머니의 애정과 희생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은 한국 여성에 대한 찬사로 확대됐다. 막연하게 모성과 여성성을 표현하던 것에서 짧은 생애를 살면서 불행했던 허난설헌 등 실존했던 여성들이 작품 속에 등장했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조상의 믿음을 받아들여 그는 고난의 삶을 살았던 여성들에게 영혼이라도 행복해지라는 의미로 오방색을 마음껏 누리도록 했다.
“우리는 여성의 희생과 사랑에 제대로 가치 부여를 한 적이 없다. 이 전시는 슬픔과 좌절을 이겨낸 모든 여성에게 존경과 경배를 바치는 제례의식이라고 생각한다.” 02-720-5114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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