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자리에만 풀칠
푹신푹신한 느낌 살아
바닥엔 콩물-들기름 코팅
“니스칠과 비교 마세요”
17일은 서울 종로구 계동 북촌 한옥마을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우리집’ 도배하는 날. 지금은 거의 맥이 끊긴 한지 도배가 한창이었다.
도배에 여념 없는 한옥문화원 건축사업단 직원들에게 중요무형문화재 제102호 배첩장 보유자 김표영 씨(84)의 충고가 끊이지 않는다.
“벽에 한지를 바른 뒤 풀이 마르기 전에 한지를 덧바르면 곰팡이가 생겨. 한지 도배에 ‘빨리빨리’는 없어. 풀이 완전히 마를 때까지 기다려.” “한지 장판도 마찬가지야. 초벌 한지가 마르기 전에 장판을 바르면 안 돼.”
한옥문화원은 전통 건축의 맥을 잇는 전문 인력을 양성해 한옥 건축과 보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건축사업단을 설립했다. 올해 1월 출범했으며 한지 도배와 목공, 미장, 기와 분야에서 50명의 인력을 확보했다.
건축사업단 김대헌 씨(43)가 경북 안동시에서 제작된 전통 한지를 일정한 규격(가로 48cm·세로 63cm)으로 자른 뒤 능숙하게 풀을 발랐다. 그런데 한지 가장자리에만 풀을 묻혔다.
“한지 전체에 풀을 발라 붙이면 벽의 고르지 못한 부분이 그대로 드러나 버립니다. 가장자리만 풀을 바르면 풀이 마르면서 한지 전체를 당겨줘 한지가 반듯해지죠. 벽의 울퉁불퉁한 부분은 드러나지 않고 매끄럽게 됩니다.”
이 과정을 ‘띄어 바르기’라고 부른다. 이 덕분에 맨 벽의 딱딱한 질감이 사라지고 푹신푹신한 느낌이 강조된 안락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띄어 바르기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같은 방식으로 한지를 두 번 덧바른다. 차가운 바깥바람을 막아주고 따뜻한 방안 온도는 유지된다. 맨 벽에 한지를 밀착시키는 초벌 도배, 띄어 바르기, 한지 벽지를 바르는 과정까지 합치면 총 5번 한지를 겹쳐 도배하는 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김표영 씨는 “요즘은 초벌로 얇은 종이를 한 번 바른 뒤 벽지를 도배하는데, 이러면 시멘트에서 나오는 성분에 의해 종이가 쉬이 삭아버린다”고 말했다.
한지 벽지를 도배한 뒤에는 해초 끓인 물을 벽지에 발라야 한다. 벽지의 보푸라기를 없애고 먼지가 앉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바닥에 한지 장판을 깔기 전에도 한지를 바른다. 요즘 장판 위에 니스를 칠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기가 통하지 않아 한지가 숨을 쉬지 못한다. 김표영 씨에 따르면 “바닥에 유리를 깐 형국”이다. 전통 방식은 공기가 통하면서 장판을 보호해 주는 콩댐이다. 콩물과 들기름을 섞은 액체를 발라야 바닥이 숨을 쉬고 자연스럽게 윤이 난다.
“현대적 방식이면 하루에 끝날 일도 전통적으로 하면 며칠 걸립니다. 한지 도배는 한 번 바르고 풀이 마를 때까지 행여 한지가 터지거나 상하지 않는지 돌보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니까요.”
전통 한지 도배의 핵심은 기다림이라는 얘기다.
도배가 끝난 한옥 방은 온기가 돌면서도 통풍이 잘되는 친환경 공간이 된다. 한지의 색감은 오래도록 자연스럽게 유지된다. 나무 부재(部材·건축물의 뼈대를 이루는 재료)와 한지의 포근함이 어울려 고즈넉한 안식처가 된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아파트는 입주 전 화학 재료를 사용한 벽지로 도배된다. 한옥 도배도 한지 대신 부직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김대헌 씨는 2005년 새로 지은 아파트에 입주했다가 6개월 만에 아토피로 고생했다며 친환경 한옥 짓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장명희 한옥문화원 부원장은 “건축사업단은 전통적 미장, 목공, 도배 방식을 아파트에 활용해 아파트 거주자에게도 한옥의 혜택을 누리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동아일보 편집국 사진부 박영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