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마지막 남기신 말씀은 ‘고맙다’였다고 한다.
고맙다, 라는 글씨를 이렇게 오래 바라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존경과 사랑을 흠뻑 받아오신 분이 마지막 남긴 말씀이어서인가. 고맙다, 라는 말이 또 이토록 사무치게 제 뜻을 고스란히 지닌 채 가슴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도 처음인 것 같다.
20대 때 나는 명동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다니는 학교가 그 근처였기 때문에 명동성당을 지나야 학교를 갈 수 있었다. 마음이 상하거나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지면 그냥 불쑥 언덕길을 올라 성당 안으로 들어가 앉아 있곤 했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는데도 성당 안의 빛과 어둠 속에 고즈넉하게 놓여 있는 미사를 보는 의자에 홀로 앉아 있다가 나오면 웬만한 것은 평정이 되곤 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부터인가 공권력이 가로막아 자유롭게 성당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명동성당은 한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고통의 순간마다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의 상징적인 안식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어제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계셨다.
생명수같았던 그분의 말씀
종교지도자로서만이 아니라 함께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가는 모든 이를 형제로 받아들였던 김수환 추기경님의 마음과 행보는 사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큰어머니와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그때 들은 그분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 속엔 부당한 현실 때문에 핍박 받는 사람들을 향한 강력한 옹호, 힘으로 그들의 인권을 짓밟는 쪽에 대한 권위 있는 저항이 강인하게 실려 있었다. 모두들 입을 다물고 살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그만큼 더 애타게 생명수를 찾듯이 그분이 한 말씀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시간이 흘러간 세월 속에 켜켜이 쌓여 있다. 나 역시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종교를 떠나 모든 이의 앞날에 그분의 말씀은 어려움을 뚫고 나갈 지혜와 힘을 주었으니까.
평안할 때보다 분란이 일어날 때 방패막이가 되어 주던 분을 잃으니 어른이나 청년이나 할 것 없이 큰 보루를 상실한 느낌이다. 여간해서는 전화를 안 하시는 시골의 아버지께서도 전화를 하셔서 헛헛하신지 그리 훌륭히 사신 분도 결국은 가시는구나 하시며 자식을 잃으면 참척이요, 부모를 잃으면 천붕이라 했는데 당신 지금 마음이 천붕지괴(天崩地壞)의 마음이라 하신다.
새벽에 후배가 보낸 듯한 문자엔 이렇게 쓰여 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선종하셨네요, 선배님!’
부모 잃은 天崩地壞의 심정
아버지는 일요일이면 어머니와 함께 읍내 성당에 나가는 재미로 사시는 분이시지만 후배나 나나 가톨릭 신자도 아닌데 그분을 보낸 마음은 다 이렇듯 든든한 무엇을 잃은 어린양이 된 듯하다. 신자들은 추기경을 잃고 슬픔에 잠겨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보려고 선종하신 그분을 찾겠지만, 일반 시민들 또한 어렵고 급박할 때마다 지혜로운 말씀으로, 시련 앞에 설 때마다 앞을 가로막아 주는 든든한 보루로 여기던 큰 어른을 잃은 마음으로 그분의 이곳에서의 마지막 길을 찾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그분은 정신적 지도자이며 큰 어른이셨다는 방증이리라.
선종 소식을 듣고 밤이 지난 아침에 눈을 떠 보니 겨울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눈을 찔러왔다. 속으로 큰 분은 가셨는데 햇살도 좋네… 생각하다 뉴스를 통해 그분의 눈이 장기기증 서약에 따라 이 세상에 남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직접 뵌 적이 없어도 나는 생전 그분의 눈을 참 좋아했다. 큰 말씀을 하실 땐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띠지만 웃으실 땐 어린아이같이 천진함이 실리던 그 눈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들이 있을까. 그 눈을 남기고 가신 마음이 크디크지만 또 한편 아프기도 했다. 어디 그분의 눈만 남았겠는가. 생전에 그분이 어렵고 슬픔에 처한 사람들을 향해 보내던 그 따사로운 눈빛은 그보다 더 빛이 되어 돌아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님!
고맙다, 고 하신 마지막 말씀, 사랑하세요, 라고 남겨놓으신 그 말씀을 고스란히 돌려드리겠습니다. 우리 곁에 계셔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사랑했습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신경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