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풍경에 말을 걸다]로마네스크 양식 서울 성공회 성당

  • 입력 2009년 2월 20일 02시 56분


설계도 찾아 70년만에 ‘십자가 모양’ 완공

일제강점기때 건축비 부족해 일자형으로 지어

英 관광객 설계도 찾아 1996년에 양날개 완공

서울 중구 을지로 서울시청을 등지고 정동 방면을 바라보면 중세 유럽풍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덕수궁과 묘하게 어우러져 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 성당(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5호).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서울 성공회 성당이라 불린다.

성공회는 기독교의 한 유파(流派)인 영국 성공회를 말한다. 1890년 인천을 통해 서울로도 전파됐다. 초대 주교인 존 코프 신부는 당시 서울 정동 서학현(西學峴)에 있던 영국공사관(현 영국대사관)과 인접한 곳에 왕족과 명문가 자제 교육을 담당하던 수학원(修學院) 건물을 구입해 성당을 세웠다. 성당 이름은 ‘장림성당(The Church of Advent)’으로 지어졌다.

작은 성당 건물을 지금의 모습으로 지은 이는 3대 주교였던 마크 트롤로프(한국명 조마가·1862∼1930) 신부로 설계는 영국인 건축가 아서 딕슨이 맡았다. 완공일은 1926년이지만 한국성공회 측에서는 이 땅에서 첫 예배가 봉헌된 1890년을 성당 창립일로 잡아 역사는 100년이 넘은 셈이다.

하지만 정작 이 성당 건물이 완공된 것은 착공한 지 70년이 지난 1996년이 되어서다. 1882년 첫 삽을 뜬 후 아직도 짓고 있다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성(聖)가족 성당(Sagrada Familia)을 연상케 한다.

아서 딕슨이 당초 설계한 도면에 따르면 성당은 큰 십자가 모양으로 건물이 지어져야 했다. 하지만 당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특수성 때문에 건축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 십자가의 양 날개를 뗀 일자형으로 건물이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1991년 서울성공회에서는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70여 년 전 설계도를 찾아 아서 딕슨이 당초 설계한 모습 그대로 성당을 증축하려 했다. 하지만 성당 어디를 찾아봐도 설계도를 찾을 수 없었다. 마침 1993년 한국을 찾은 한 영국인 관광객이 이 사연을 듣고 자신이 근무하던 도서관에서 원 설계도를 찾아냈다.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1996년 성당은 원래 설계도 모습 그대로 재현될 수 있었다.

이 건물은 국내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 건축물로 통한다. 건물이 지어질 당시 건축가는 덕수궁과의 조화를 고려해 수직 느낌의 고딕양식 대신 아치형 지붕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성당 건물에 접목했다. 성당 내부를 목조로, 외부는 화강석과 붉은 벽돌로 꾸며 바로 옆에 붙은 덕수궁과 어울리게 배려했다.

지붕에는 기와를 얹었고, 성당 내부 천장은 우리의 한옥처럼 서까래를 깔았다. 성당 1층 창문에는 우리 고유의 오방색 (五方色)을 서구식으로 재해석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마치 문풍지를 바른 한옥문을 연상케 한다.

80여 년 전 한 서양 건축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이 성당은 한국적인 미감(美感)이 물씬 풍긴다. 종교적인 의미와 별개로 주말에 발길을 돌려봐도 좋을 것 같다.

안현정 씨

건국대 공예학과 졸업. 성균관대 대학원 미술사학 석사과정과 동대학원 동양철학과(예술철학전공)박사. 현재 서울예술대, 건국대 강사로 재직 중.

■ 찾아가기

서울 지하철 1호선 시청역 3번 출구로 나와 코리아나 호텔 방면으로 50m가서 두 번째 큰 골목을 끼고 좌회전.

■ 안내받기

이 교회는 누구에게나 개방돼 있고, 자원봉사자가 항시 상주하고 있다. 성당 사무실을 방문하거나, 서울 성공회성당 홈페이지(www.cathedral.or.kr)에 방문예약을 하면 안내봉사자가 방문 시간에 맞춰 안내해 준다. 지하 성당은 아침 감사성찬례(오전 7시) 후 저녁 기도(오후 5시 반) 때까지 개방하고 대성당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한다. (02-730∼661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