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6일 오후 4시. 서울 논현동 일명 가구 거리에 위치한 녹음실 모조사운드의 A룸.
가수 케이윌이 자신의 새 음반에 담을 노래를 한창 녹음하고 있다. 녹음실 부스 안에는 케이윌이 헤드폰을 낀 채 노래를 부르고 있고, 이 노래를 만든 작곡가 황찬희가 복잡한 조작 장치가 붙어 있는 대형 콘솔 앞에 앉아노래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 그의 옆에는 엔지니어가 컴퓨터를 통해 녹음작업을 하고 있다.
“바이브레이션은 좋은데, 애드리브가 너무 산만해. 거긴 한 포인트만 꼬면 돼.” 황찬희의 지적에 케이윌은 ‘워우~워~’ 하는 애드리브를 길게 끌지도, 많이 꼬지도 않고 끝낸다. 하지만 애드리브에 신경쓰다보니 다음 소절의 박자를 놓치고 말았다.
“거긴 음을 좀 당겨야 되는데, 놓쳤네. 다시 해보자.” “네. 다시 할게요.” 그러나 케이윌이 또 틀리자, 황찬희는 잠깐 이마에 손을 짚고 있다가, 세수하듯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아래위로 비빈다. 피곤해보였다. 사실 오후 4시는 녹음실 사람들에게는 꼭두새벽이다.
황친희는 이날 아침 8시에 잠들었다가 녹음을 위해 오후 1시30분에 일어나 녹음실로 왔다.
●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
녹음실은 보통 오후 6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이후부터 대개 네 시간 단위로 녹음실 사용 예약을 받는다. 이 네 시간을 녹음실에서는 ‘프로’라고 한다. 케이윌은 이번 녹음을 위해 한 프로만 예약했다. 즉 네 시간을 예약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녹음은 주로 밤에 할까. 우선 작곡가가 주로 ‘야행성’이다. 또한 가수의 목소리 컨디션이 가장 좋을 때도 저녁 무렵이다. 밤은 또 세상이 ‘잠든’ 시간이기에 그만큼 집중력도 높아진다. 일부에서는 ‘노래는 달의 음기를 받아야 한다’는 속설도 있다.
노래 녹음은 작사와 작곡, 편곡 그리고 악기녹음이 끝난 상태에서 하는 게 보통이다. 작곡은 일반인이 생각하듯, 악보에 음표로 표기하기 보다는 보통 ‘입’으로 한다.
작곡가 기본적인 반주 위에 멜로디를 흥얼거린 상태를 ‘데모’라 한다. 음반 제작자가 데모를 우선 듣고 ‘OK’ 결정을 내리면 작곡가가 정식으로 편곡 작업을 하고 작사가에 노랫말을 맡긴다. 편곡은 어떤 악기를 넣느냐, 템포는 어떻게 하느냐 등 곡의 색깔과 장르를 정하는 작업이다.
작곡가에게는 보통 ‘필’이 잘 통하는 콤비 작사가가 있다. 황찬희의 경우엔 조은희, 윤사라, 심재희라는 단짝 작사가가 있다.
또한 편곡을 하면서 가사 없이 멜로디만 의미 없는 언어로 흥얼거린 것이 가이드송이다. 노래를 부를 가수는 이 가이드송을 들으며 멜로디를 익힌다. 멜로디를 충분히 익혀야 노래 녹음할 때 어려움이 없다.
녹음실에서는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빨리 끝내야 비용도 적게 든다. 또 스태프들의 정신 건강에도 좋다. 작사가도 이 가이드송을 들으며 노래말을 쓴다.
케이윌처럼 가창력이 뛰어나고 곡 해석능력이 뛰어난 가수면 한 프로 만에 한 곡이 끝나지만, 신인가수인 경우 서너 프로(12-16시간)나 녹음을 해도 한 곡을 끝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녹음 징크스도 가지가지
케이윌은 애드리브에서 자꾸 꼬이자 잠깐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잠시 혼자 목청을 돋우면서 연습을 했다. 다시 녹음을 시작하려하자 그는 녹음실 부스의 전등을 껐다. 이른바 ‘느낌을 잡기’ 위한 행동이다.
가수들은 이렇게 감정을 잡기 위해 저마다 독특한 버릇과 징크스가 있다. 케이윌처럼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노래하는 가수부터 쿨처럼 촛불을 켜거나 이승철처럼 맨발로 노래하기도 한다. 심지어 에픽하이의 타블로는 옷을 거의 다 벗고 나선다.
그런가 하면 은지원은 녹음 전 꼭 자양강장제인 드링크를 마시며, 김범수는 특정 의상과 슬리퍼를 갖고 와 녹음할 때만 입기도 한다. 또한 일부 가수들이 흥을 돋울 정도의 술을 마시고 녹음을 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례다.
어둠 속에서 ‘감’을 잡은 케이윌이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황찬희가 다시 머리를 긁적이자, 케이윌은 “다시 한 번 해죠”라고 먼저 ‘자수’한다. 황찬희는 “그래, 앞부분만 다시 한 번 해보자”면서 엔지니어에게 “이 부분부터 반주 주세요”라고 했다.
케이윌은 몇 차례 노래를 더 불렀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기침이 나오는 바람에 그만 녹음을 다시 멈춰야했다. 케이윌이 물로 목을 적셨다.
“형수야, 좀 쉬었다 하자.” 케이윌의 본명이 김형수다. 이 틈을 이용해 녹음실 부스로 들어가 보았다. 녹음실 부스는 10평은 넘어 보여 꽤 넓었다. 그런데 벽은 우리가 알고 있던 계란을 담는 판지처럼 생긴 엠보싱 벽이 아니었다.
요즘은 계란판은 쓰지 않고, 그냥 일반 벽지처럼 보이는 흡음재를 쓴다고 했다. 너무 흡음력이 강하면 마이크 소리까지 흡수해버려 적당한 것이 좋다고 한다.
또 녹음실은 넓을수록 좋다. 공간감이 좋기 때문이다. 녹음 중에는 녹음실 부스는 어떤 공조장치도 사용해서는 안된다.
음악에 미세한 에어컨이나 히터소리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좁은 부스에서 장시간 녹음을 하면 더위에 탈진하고 만다. 반면 엔지니어가 있는 공간은 항상 서늘해야 한다.
수천만 원대의 음향기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럼 가끔 방송에서 볼 수 있는 마이크 앞에 붙은 둥그런 망은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팝 스크린’이라는 이 장치는 침이 마이크에 튀는 것을 막아 잡음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준다.
● 디지털 싱글 제작 늘면서 녹음실 포화
녹음이 끝난 노래는 필요에 따라 코러스나 랩 등을 덧입힌다. 그리고 믹싱과 마스터링 과정을 거친다. 믹싱은 사람의 노랫소리와 악기소리 등 각기 소리들의 크기를 조절하고, 특정 소리를 두드러지게 만들기도 하고, 어떤 소리는 들릴 듯 말 듯 낮추면서 노래의 맛을 살리는 작업이다.
마스터링은 이 각각의 노래들의 소리와 볼륨을 고르게, 통일감 있게 만드는 작업이다. 믹싱은 한 곡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작업이라면, 마스터링은 앨범 전체를 대상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한 곡 한 곡 녹음을 마치면, 이를 한 저장소에 모으고 CD에 옮겨놓는다. 이렇게 이뤄진 최초의 CD를 마스터CD라 하고, 이 마스터 CD를 복제해 CD도 찍고, mp3파일도 만든다.
현재 서울시내에 있는 녹음실은 엔지니어도감에 올라 있는 것만 50여개. 여기에 YG, JYP 등 대형 기획사는 사옥 내 녹음실이 따로 있고, 개인 작업실도 많아지면서 정확한 녹음실 개수는 집계가 불가능하다.
케이윌, 황찬희와 잠깐의 담소 후 이별의 악수를 나누자 일단의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저마다 악기를 들고 녹음실로 한 명씩 들어왔다. 다른 가수의 노래에 들어갈 현악기 연주 녹음이 예정돼 있다고 했다. 녹음실은 포화상태라지만, 디지털 음반 제작이 급증하면서 그래도 녹음실은 바쁘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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