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8년 제5공화국 막내려

  • 입력 2009년 2월 24일 02시 58분


오욕의 정권 물러나다

“인간은 나라를 위해서 등장할 때가 있고, 퇴장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본인은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명예를 실천하는 한 사람 군인으로서 생애를 보내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가졌을 뿐 정치에 뜻을 둔 적은 없었습니다. 이제 본인이 그 무거웠던 ‘책임자의 고독’으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1988년 2월 24일 제5공화국이 막을 내렸다. 7년 전인 1981년 2월 25일 전두환 대통령 취임과 함께 출범한 제5공화국은 이날 전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발표한 이임사에서 “본인은 정치와 사회의 극심한 혼란과 안보의 위기 상황 속에서 역사의 흐름과 시대적 요청이라는 피할 수 없는 대세에 따라 대임을 맡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이제 다시는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정치 혼란과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 혼란이 있어서는 안 되며, 또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없을 것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전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수석비서관들과 함께 서울 동작구 국립묘지를 찾아 참배, 헌화하고 저녁에는 서울 힐튼호텔에서 1023명이 참석한 전별 만찬을 끝으로 12대 대통령으로서의 공식일정을 모두 마쳤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0·26사태’와 ‘12·12쿠데타’, 1980년 ‘5·17조치’와 ‘5·18민주화운동’ 등 일련의 유혈 사태와 격변을 배경으로 제5공화국은 탄생했다. 그러나 ‘총’으로 시작된 정권은 출발부터 정통성 시비에 휘말렸다. 제5공화국의 7년은 갈등과 충돌, 대립과 시련으로 점철됐다. 이 기간 중 나라는 바람 잘 날 없는 어수선한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제5공화국이 격동과 저항의 시대였다는 점은 이른바 시국사범에 관한 통계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1980년부터 1987년 사이에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이 1800여 명,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사범이 5300여 명이었고, 노사분규로 구속된 사람도 650여 명에 달했다.

전두환 정부는 국민의 민주화 욕구를 억누르면서 물가 안정과 경제 성장 기조를 선택했다. 이 기간에 무역수지 흑자는 이어졌고 일자리 걱정은 않을 정도로 경제는 성장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이 같은 경제 치적에도 불구하고 제5공화국은 민주화운동 억압과 인권 탄압, 각종 대형 부정과 비리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공직자 언론계 교육계 인사 숙정과 민주화운동 압박, 잇따른 시위와 대량 구속 사태, 정권의 정통성 시비, 노사 계층 및 지역 간 갈등 심화 등 어두운 그림자는 제5공화국을 늘 따라다녔다.

결국 제5공화국의 종말은 노태우 정부와 문민정부의 ‘5공 청산’으로 이어졌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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