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두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IMF 직후 연간 68만여 건에 이르던 경매 집행건수가 2007년 이후 114만여 건을 넘나들고 있다.
하나 남은 밥벌이 수단을 빼앗기고, 애지중지 아껴온 살림살이가 남의 손에 넘어가고, 수십 년 우정이 단돈 몇 십만 원에 허물러지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이 살풍경의 한 복판에서 언제나 주연은 돈이고 인간은 그저 조연일 뿐이다.
32년간의 검찰수사관 생활을 마치고 집행관으로 인생 2막을 살아가는 저자는 지난 3년 6개월간 집행관으로 활동하며 서울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감춰진 사람들의 온갖 그늘을 몸으로 느껴왔다.
경매과정에서 벌어진 사연들을 조목조목 기록해온 저자는 이번에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냈다.
경매 아파트의 상황조사를 갔다가 집주인이 휘두른 프라이팬에 머리를 얻어맞은 사연, 임대주택의 문을 째고 나온 어른 팔뚝만한 식칼, 손자의 카드 빛에 넘어간 할머니의 아파트, 이혼한 아내에게 결혼패물을 돌려달라며 벌인 소송 등 참혹한 우리의 현실을 가감 없이 전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뺏은 자와 뺏긴 자, 속은 자와 속인 자가 벌이는 갈등의 중심에는 항상 돈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돼 벌이는 다툼은 끝도 없다. 저자는 “돈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싸움에서 돈이란 놈은 언제 어디서고 말짱하게 그대로인데 변하고 다치고 상처 입고 후회하고 눈물 흘리는 것은 항상 사람”이라고 한탄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꽁꽁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닫힌 마음을 열고, 막힌 마음의 통로를 뚫어 마음들이 잘 흐르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마음의 경제학”이라고 주장한다.
“조물주는 돈을 먼저 창조하고 그 한 쪼가리를 떼어 대충 인간을 만든 게 아닐까”라는 저자의 독백이 오랫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집행관 일기/ 이원섭 지음, 이승열 그림/ 1만2000원/ 272쪽/ 신국변형/ 오푸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