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 “적막한 빈땅”
일제강점기인 1930, 40년대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 시인들이 만주라는 공간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분석한 논문이 나왔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최근 학위를 받은 전월매 박사(38)의 ‘일제강점기 재만(在滿) 조선인 시에 나타난 만주 인식 연구’. 저자는 옛 만주 땅인 헤이룽장(黑龍江) 성에서 태어난 중국교포 3세다.
그는 논문에서 시인들을 △만주에서 나고 자란 윤동주 △망명과 이민을 위해 만주로 갔다가 귀국한 서정주 △사상적 실천을 위해 만주에 머물렀던 이육사 등 세 유형으로 구분했다.
저자는 윤동주에게 고향인 만주 북간도 명동(현 지린성 룽징에 있는 마을)은 어머니와 공존하는 모성의 공간이었다고 말한다. 시 ‘별 헤는 밤’에는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라는 대목을 비롯해 ‘어머니’가 시적 화자의 그리움의 핵심으로 등장하며 그 어머니가 있는 곳은 ‘북간도’라고 명확하게 표현돼 있다. ‘남쪽하늘’에서 북간도는 “어머니의 젖가슴”으로, ‘버선본’에서는 “(어머니가) 내 보선(버선) 만드는 (곳)”으로 나타난다.
서정주에게 만주는 “기대가 무너져 내리는 하늘뿐인 텅 빈 공간”이었다. 1939년 10월 일자리를 찾아 만주로 간 뒤 5개월가량 머문 그는 빈곤과 원활하지 못한 언어소통, 소외감,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괴로워했다. 시 ‘만주에서’를 통해 “바로 말하면 하르삔(하얼빈)시(市)와 같은 것은 없었읍니다”라며 경제난을 해결해줄 도시로 여겼던 하얼빈에 대한 기대가 깨졌음을 드러냈고 ‘만주일기’에서는 적막감과 고독감을 표현했다.
이육사는 1931년 독립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주로 가서 1933년까지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면서 작품에는 한 차례도 ‘만주’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일제가 만든 괴뢰정권인 만주국의 냄새가 난다는 이유에서였다. 시인은 ‘절정’ ‘꽃’ 등의 작품에서 조국 광복을 꿈꾸며 기상을 드높이는 훈련 터전인 중국 대륙을 상정하고 이를 북극, 북방, 북해안, 북해, 북쪽 등으로 표현했다.
저자는 김달진 유치환 등은 작품에서 한민족의 옛 뿌리가 만주에서 자라났다는 고토의식(故土意識)을 드러냈다고 말한다. 김달진이 시 ‘용정(龍井)’에서 용정을 “새론 옛 고향”이라고 표현하고 유치환이 ‘북방 10월’에서 “허물어진 성터”라며 만주가 우리 영토였던 광개토대왕 시대를 회상한 사례를 든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