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은 생각보다 금세 흘러간다.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로 시작되는 영상과 소리, 빛의 어울림. 12분 동안 이어지더니 3분간 잠잠해진다. 그동안 관람객들은 철사와 투명 나일론 줄 등 공업 재료로 만든 거대한 하프처럼 보이는 설치작품 사이를 걸어가거나, 공간을 채우는 사랑에 대한 인터뷰와 음악, 빛의 영향을 받아 흰 벽에 비친 이미지를 감상하며 작품의 일부로 스며든다.
3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토포하우스 2층에서 열리는 배정완 씨(35)의 설치작품 ‘겨울은 기억에 빛을 입힌다’전의 풍경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컬럼비아대 대학원 출신 건축가이자 설치작가인 배 씨는 건축과 미술을 접목하는 자신의 특장을 십분 발휘한다. 전시공간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바탕으로 건축 음악 영상이 넘나들며 ‘기억’이나 ‘사랑’처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
“형태는 다르지만 내 설치작업도 건축의 일부다. 공간의 실용성이 강화된 것이 건축이라면 시간성이나 감성이 집약되면 설치미술로 불리는 것일 뿐이다.”
‘사랑에 대해-12분의 인내심과 3분의 자유시간이 필요함’이란 영어 제목의 뜻을 묻자 그는 “영상도 5∼8분을 넘기면 집중도가 떨어진다. 빨리빨리 즐기고 곧 식상하는 요즘, 조금만 인내와 여유를 갖고 사물을 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기억과 시간은 상대적이다. 동일한 사건에 대한 5년 전과 지금의 기억에 차이가 난다. 상황에 따라 시간의 흐름도 빨라지거나 느려진다. 감정에 따라 똑같은 것도 다르게 해석하는 차이가 생기는 것. 작가는 이런 사유를 동일한 구조지만 놓인 각도와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설치작업으로 접근한다.
첨단 설치작품임에도 소리 이미지 빛이 어우러져 분위기는 매우 서정적이다. 사랑에 관한 15분 명상의 체험을 제안한다. 작가는 “내 작업은 디지털을 아날로그 식으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배 씨는 배순훈 국립현대미술관장과 화가 신수희 씨의 아들. 2007년 성곡미술관 ‘내일의 작가’로 선정됐고 지난해 경주선재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가졌다. 02-734-7555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