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종말을 두 번 겪었다’고 말하는 작가가 있다. 지체장애아인 두 아들의 이야기 ‘아빠 어디 가?’(열림원)로 2008년 페미나상을 받은 프랑스의 베스트셀러 작가 장루이 푸르니에(71·사진)가 그다. 정신지체를 가진 아들이 수백 번 반복하는 질문을 제목으로 한 이 소설은 출간과 함께 프랑스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현지 언론들은 이 작품의 성공요인을 “장애문제에 대한 선입견을 뛰어넘는 유머와 감동”으로 꼽는다. 작품 속에서 저자는 ‘아빠 어디 가?’란 아들의 질문에 ‘고속도로를 타러 간단다. 역방향으로 말이야’ ‘나도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구나…. 가자니 태산이고, 돌아서자니 숭산인 것을, 이러다 골로 갈지도’라고 태연히 대꾸한다.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와 e메일로 인터뷰했다.
―많은 책을 썼지만 지체장애를 가진 아이들에 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상처나 아픔일 수도 있는 실화를 뒤늦게 소설로 써낸 이유가 궁금하다. 가족관계, 아이들의 병세와 이름 등이 모두 실화라면 에세이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한데….
○ “마냥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다”
“소설이기도 하지만 에세이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던 것을 솔직히 털어놓은 고백록일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연약해지고 건강이나 기억력도 감퇴하고 있다. 이때야말로 아들들과 나의 관계에 대해 한번 돌아볼 때가 아닌가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이들에게 너그럽게 대하거나 마냥 좋은 아버지가 돼 주진 못했다. 사랑했지만, 사실 버거웠다. 그들을 창문으로 확 던져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두 아들이 장애아로 태어난 데다 그중 큰아들은 15세에 죽고 말았다. 아내와의 파경 등 평범한 사람들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잇달아 겪어야 했지만 소설은 웃음을 잃지 않으며 때론 그런 상황을 희화화까지 한다. 당신에게 ‘유머’란 어떤 의미인가.
“유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무기다. 견디기 힘든 환경에서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은 늘 유머였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던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에도,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 대한 편견에 가득한 시선에 변화를 주기에도 좋다. 이 글을 쓸 때 적절한 톤을 찾기 위해 가장 고민했다. 너무 우울하지도, 잔인하지도 않게 장애문제를 풀어나간 책이 여태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두 아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불평불만 가득한 것으로 쓸 수는 없었다.”
―장애아를 키우기 위해서는 ‘천사의 인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지켜보며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만약 기회가 다시 온다면 ‘천사의 인내’로 그들을 키울 수 있을 것 같은지도 궁금하다.
○ “우리는 모두 장애를 가지고 살지 않나”
“내 아이들은 하나를 가르쳐주면 바로 잊어버렸다. 이들을 위해 내가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두 아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책의 성공이 무척 기쁘지만 이 기쁨을 그들과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임에도 말이다. 그래서 말이지만, 이 생에서 이미 두 번의 종말을 겪은 것으로 족한 것 같다. 다음 생애에도 똑같은 일을 겪어야 한다면, 이번에는 천사가 뭔가? 악마가 될지도 모른다.(웃음)”
―이 책이 한국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혔으면 하는지….
“장애아를 키우는 직접적인 어려움 외에도 편견에 부딪혀 겪는 문제가 많다.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슬퍼하거나 혹은 아예 피해버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나는 일상적인 문체를 통해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우리들이 실은 모두 약간의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책을 통해 한국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페미나상:
1904년 창설된 페미나상은 공쿠르, 메디치상과 함께 프랑스의 3대 문학상으로 손꼽힌다. 매년 12월 초순 그해에 발표된 문학작품 중에서 수여된다. 공쿠르상의 남성 중심주의에 반발해 심사위원이 모두 여자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다. 역대 주요 수상작품으로는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1905년),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1931년) 등이 있다. 1985년부터는 에세이, 외국 소설 부문도 시상하고 있다. 2004년 황석영 작가의 장편소설 ‘손님’이 외국어소설 부문 수상 후보에 올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