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다양한 일화도 소개
《1989년 3월 7일 새벽. 29세의 기형도 시인
(1960∼1989)이 서울 종로의
한 극장에서 뇌중풍(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유고시집으로
남게 된 첫 시집의 제목조차
미처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
소설가 성석제, 문학평론가 이영준 씨 등 지인들이 유고를 추렸고, 해설을 맡았던 평론가 고 김현 씨가 제목을 붙였다. 지금까지 총 65쇄를 찍으며 문청들의 필독서가 된 ‘입 속의 검은 잎’이다.
단 한 권의 유고시집으로 문학적 상징이 된 기형도 시인의 20주기를 맞아 시인의 문학세계와 생애를 재조명하는 추모문집 ‘정거장에서의 충고-기형도의 삶과 문학’(문학과지성사)이 다음주 초 나올 예정이다. 소설가 성석제 김훈, 시인 이문재 씨 등 그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던 문인들의 산문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인의 인간적인 면모, 시집과 관련된 다양한 일화 등을 보여준다.
기형도 시집에 드리워진 ‘죽음의 예감’들은 공교롭게도 이 시집을 두고 1년 간격으로 이어진 두 문인의 죽음과도 연결된다. 시인 자신이 출간 전 요절했으며, 1여 년 뒤 작품론을 썼던 평론가 김현 씨가 암으로 죽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김병익 씨는 “향년을 29년과 48년으로 달리하며 한 해 사이로 이어간 두 죽음은, ‘입 속의 검은 잎’이란 충격적인 형해(形骸)의 이미지를 통해 허망한 죽음의 인식에 대한 시와 시인론으로 겹쳐지며 시너지 효과로 증폭한다”고 말한다.
새로운 소식을 전할 때는 “경악, 경악!”,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는 “아, 절망, 절망!”이라고 과장된 말투와 몸짓으로 말하곤 했던 기형도 시인의 밝고 유쾌한 모습을 기억하는 문학평론가 이영준 씨는 “그 선량해 보이는 청년이 남겨놓은 시의 절망은 한동안 나를 당혹하게 했다”고 말한다. 서울 태생의 부드러운 말투와 빼어난 노래실력, 술 대신 콜라를 마시던 습관 등 요절시인이란 후광에 가렸던 인간 기형도의 모습이 되살아난다.
‘포스트 기형도 세대’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시인인 김경주, 김행숙, 심보선, 하재연 시인 등은 1990년대 이후 학번들에게는 필독서이자 통과의례로 잡은 기형도 시집의 현재적 의미와 낭만적 수사, 고백체 형식 등이 기형도 이후 세대의 시작(詩作)에 미친 영향 등에 관해 좌담을 나눴다. 그의 문학사적 위치를 재조명해보는 평론도 수록됐다.
추모행사도 마련된다. 다음 달 5일 문학과지성사는 추모문학콘서트 ‘기형도 시를 읽는 밤’을 진행하며 6일 고인이 유년시절을 보낸 경기 광명에서는 광명시 주최로 ‘기형도 문학의 밤’이 광명시민회관에서 열린다. 기일인 7일에는 문우들과 연세문학회 후배 등이 경기 안성시에 있는 고인의 묘소를 찾을 예정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