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고급-희귀 와인 시음회…맛에 취하고 색에 홀리고

  • 입력 2009년 2월 27일 02시 58분


《눈이 번쩍 뜨이는 e메일 초대장이 기자에게 배달됐다. 국내 와인수입회사 중 한 곳인 바쿠스와인이 서울 유명 호텔과 식당의 와인 소믈리에와 일부 기자들에게 와인 시음회 초청장을 보내온 것이었다. 와인 담당 기자가 와인 시음회에 초대받는 일은 종종 있다. 하지만 이 행사는 40여 종의 부티크 와인과 컬트 와인, 그리고 국내 최초의 미슐랭 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인 롯데호텔 프랑스 식당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이 파는 와인들을 맛볼 수 있어 구미가 당겼다. 최근 경기가 나빠져 국내 와인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지만 와인 애호가들은 오히려 고급 희귀 와인을 찾고 있다. 부티크 와인은 소량 생산되는 고품질 와인, 컬트 와인은 마니아들이 숭배하는 와인을 뜻한다. 또 요즘 마니아층이 늘고 있는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은 명가(名家)의 와인이 많아 와인 수입회사들이 고급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강화하는 추세다. 11일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워커힐호텔 애스턴하우스에서 열린 이 와인 시음회에 다녀왔다.》

○ 샤블리 와인의 우아한 매력

이날 드레스코드인 정장 차림으로 애스턴하우스에 도착하자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식당 한가운데에 보석같이 진귀한 와인들이 가득 구비돼 있었다.

와인 소믈리에들은 자리를 잡자마자 이 와인들을 맛보기 위해 중앙 테이블로 향했다. 이들은 와인을 입 속에 넣고 마지막 여운까지 천천히 감상했다. 이후 준비된 물로 입을 헹구고 와인 잔을 바꿔 다른 와인들을 차례로 맛봤다. 찬찬히 지켜보니 여러 와인을 마셔보기 위해 입 속의 와인을 다시 뱉어내는사람도 있었다.

기자도 와인 시음에 나섰다. 가장 먼저 마셔본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 부티크 와이너리인 ‘도멘 빌라우드 시몽’의 샤블리 와인.

100% 샤도네이 포도 품종으로 만드는 이 화이트와인에선 파인애플과 사과 등 과일향이 가득 피어났다. 다음엔 이 와이너리의 샤블리 1등급 ‘몽 드 밀리우’와 샤블리 그랑크뤼(특등급) ‘레 프뤠즈’로 같은 샤블리 와인도 등급을 높여가며 마셔봤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보디감(와인 맛의 무게)이 묵직해지면서 버터 맛처럼 미끌한 느낌이었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 최서북단에 위치한 샤블리 마을의 샤도네이 와인은 맛이 깊어 우아한 와인으로 꼽힌다. 특히 레 프뤠즈는 샤블리 전역에서 생산되는 단 7개 그랑크뤼 샤블리 와인 중 하나로 8∼15년 저장할 수 있다. 샤블리 와인은 굴, 송어, 푸아그라(거위 간) 등과 잘 어울린다.

○ 소믈리에들이 선택한 와인

프랑스 랑그도크 지역 와이너리인 ‘록 당글라드’의 ‘뱅 드 페이 뒤 가르’는 그 어떤 와인보다 독특했다. 느끼한 맛에 고린내 나는 사향노루 향이 가득했다. 시음회 참석자들은 이 와인의 맛에 대해 호불호(好不好)가 갈렸다. 이 와인은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서 20만 원에 팔리고 있다.

김혜령 웨스틴조선호텔 소믈리에는 “맛과 향이 매혹적이라 앞으로 조선호텔 와인 리스트에 포함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프랑스 최남단에 위치한 랑그도크 지역은 30여 년 전만 해도 값싼 와인들이 많이 생산됐지만 전통적 포도 품종만을 고집하지 않아 오히려 요즘엔 특색 있는 와인이 늘어나고 있다.

장지석 서울 광진구 W호텔 소믈리에는 이탈리아 슈퍼 토스카나 컬트 와인인 ‘아르젠티에라’와 미국 소노마 밸리의 ‘세게지오’ 와이너리의 ‘진판델 소노마’를 추천했다.

슈퍼 토스카나 와인은 까다로운 이탈리아 와인법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프랑스 고급 포도 품종과 이탈리아 고유 품종을 섞어 만든 이탈리아 최고급 신종 와인이다. ‘사시카이아’, ‘티냐넬로’, ‘오르넬라이아’ 등이 있는데, 아르젠티에라는 이들 와인보다 싸면서 맛이 부드럽다.

세게지오 진판델 소노마는 말린 자두와 같은 달콤한 맛이 와인 초보자에게 적합할 것이라는 게 장 소믈리에의 설명이었다. 이 와인은 지난해 세계적 와인잡지 ‘와인스펙터’가 선정한 100대 와인 중 10위에 올랐다.

고품질 소량생산으로 마니아들 유혹

소믈리에들, 마지막 여운까지 음미

○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이 ‘뜬다’

이날 시음회 참석자들은 부르고뉴 와인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어느 참석자가 “마치 실크 드레스를 입은 여성 같다”고 맛을 표현한 ‘샹 볼 뮈지니’를 비롯해 ‘뉘 생 조르주’, ‘클로 드 부조’ 등이 인기였다.

국내 와인 시장 초창기엔 소비자들이 읽기 쉬운 라벨을 지닌 칠레 등 신대륙 와인이 인기였다. 하지만 몇 년 전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이 인기를 끈 이후엔 저가(低價)와 고가(高價) 와인 시장이 양분됐다. 올해는 와인 애호가들을 중심으로 최고급 와인인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이 뜰 것으로 와인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로마네 콩티’를 비롯해 세계적 명품 와인 독점 수입권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신동와인이 최근 ‘도멘 데지니’와 ‘도멘 아 에프 그로’를, 두산와인이 ‘도멘 레슈노’ 등 부르고뉴 지역의 최고급 부티크 와인들을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킨 게 이 같은 트렌드를 반영하는 한 예다.

부르고뉴 와인은 보르도 와인과 비교해 생산량이 적어 희귀하다. 또 부르고뉴의 레드 와인은 대부분 100% 피노누아 품종으로 만든다. 피노누아는 영화 ‘사이드웨이’에서 까탈스럽고 다루기 힘든 여자로 비유될 정도로 부드럽고 섬세한 맛과 향이 특징이다.

○ 많이 마실수록 느는 와인, 하지만 와인 가격 유감

기자는 시음회 내내 고급 와인들을 욕심내 마셔 나중엔 알딸딸해졌다.

그래도 전체 생산량의 90%를 로마 바티칸 교황청 만찬에 사용한다는 이탈리아 고급 스푸만테 와인인 ‘오페레 리저브 아말리아 모레티’를 끝으로 마셔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잘 익은 살구 맛이 나더니 뒷맛이 꿀처럼 달았다.

이토록 갖가지 매력을 지닌 와인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와인은 많이 마실수록 그 맛의 차이를 느끼게 마련인데, 환율 상승으로 와인 가격이 올라 원통할 뿐이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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