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낯선 이순신, 웃기거나 미치거나

  • 입력 2009년 2월 27일 02시 58분


영웅에 대한 새로운 해석 담은 창작뮤지컬 2편 선보여

《밤하늘의 별처럼 고결하고 성스럽게 여겨졌던 이순신 장군을 인간적 약점이 많은 지상의 존재로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공연계에서 일고 있다. 올해 이순신 장군을 담은 뮤지컬 2편 속 이순신은 한마디로 ‘웃기거나 미친다’. 서울 대학로 바탕골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창작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연출 이현규)의 주인공 이순신은 코믹한 인물로 등장한다. 시대적 배경은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가 시작하는 시점과 비슷하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한 가운데 이순신이 조정 모리배의 참소로 삼도수군통제사에서 쫓겨나 전남 순천 바닷가에서 백의종군하던 시기다. 이순신은 이때도 ‘난중일기’를 계속 써왔는데 이틀의 기록이 빠져있다. 뮤지컬은 이 이틀 동안 이순신이 왜군 무사에게 잡혀 포로가 됐을 것이라는 엉뚱한 상상을 펼친다.

그래서 우리의 이순신은 무명병졸로 신분을 감추기 위해 막말 섞인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다(이순신은 충남 아산에서 성장해 충청도 사투리에 익숙했을 것). 그는 허기를 때우려 왜군 무사에게 고구마 하나를 구걸하다 “고구마를 고구마라 칭하지 못하고 나를 이순신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한다. 그런가 하면 조선백성에겐 은근히 자신이 이순신임을 과시하다 봉변을 당하고 “나가 적군에게 잡혔었다는 사실을 시상에 알리지 마야 잉”이라고 당부한다. 조선수군이 궤멸한 칠량도 해전의 패전 소식을 접한 그는 꿈속에서 왜군 무사의 얼굴을 한 선조에게 자신을 시기해서 파직한 것 아니냐고 따지면서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한편 4월 충무아트홀에서 막이 오를 연희단거리패의 대형 창작뮤지컬 ‘이순신’(연출 이윤택) 속 이순신은 전쟁이 진행되면서 서서히 광기에 사로잡힌 존재가 되어 간다. 그는 아내와 첩이 도깨비 탈을 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겁탈 당하고 도깨비 아기를 낳는 악몽에 시달린다. 전쟁 초기 냉정을 유지하던 그는 학살된 백성의 주검 앞에서 “제게 원귀의 저주를 내리소서/차라리 피를 뒤집어 쓴 귀신이 되어/이 바다를 평정하겠소”라고 악을 쓴다. 급기야는 “내가 미쳐가는구나/세상이 온통 죽은 귀신들로 들끓어/내가 미쳐가는구나”라며 실성 상태에 이른다.

연출자 이윤택 씨는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지독한 자아분열을 경험하는 1590년대의 이순신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붕괴를 목도하는 오늘날 지식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광기에 사로잡힌 이순신을 그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순신에 대한 이런 성상(聖像) 타파의 움직임은 ‘제3의 물결’에 해당한다. 제1의 물결은 문학에서 시작됐다. 1998년 발표된 김탁환의 소설 ‘불멸’과 2001년 발표된 ‘칼의 노래’ 속 이순신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 번뇌와 고민에 휩싸여 스스로 자살을 선택하는 실존적 인간으로 그려졌다. 제2의 물결은 영상매체를 통해 이뤄졌다. 근엄한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 익살코드를 입힌 ‘메가패스 장군’ 광고와 쿠데타냐 숙청이냐의 사이에서 자살을 선택하는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그 대표주자다. 이에 대해 역사왜곡 또는 신성모독을 비판하는 반발이 거셌다. 공연계가 주도하는 ‘웃기거나 미쳐가는 이순신’은 또 어떤 반향을 낳을지 주목된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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