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수납의 여왕

  • 입력 2009년 2월 27일 02시 58분


일본판 ‘마샤 스튜어트’ 곤도 노리코 현지 인터뷰

국내 건설사와 손잡고 ‘아파트 수납혁명’ 진행중

《전직 이삿짐센터 도우미였던 곤도 노리코 씨는 그만의 톡톡 튀는 수납법으로 일본 주부들의 ‘살림 멘토’로 활약 중이다. 아사히 신문의 정기기고 뿐 아니라 20년 간 수납 노하우를 담은 책만도 십여 권. 그는 ‘수납이란 그 물건을 사용할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는 수납 철학을 갖고 있다.

그의 따뜻한 수납이야기는 다음달 6일부터 본보 마이위크엔드에 매주 연재될 예정이다.》

일본판 ‘마사 스튜어트’로 불리는 ‘수납의 여왕’ 곤도 노리코(近藤典子·52) 씨. 곤도 씨는 20년 전 남편의 이삿짐센터 일을 도와주다 그만의 독특한 수납 노하우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유명인사가 됐다. 지금은 수납뿐 아니라 일본 주부들의 ‘라이프 컨설턴트’로 활약 중이다.

그의 수납 비법은 값비싼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 대신 페트병이나 우유팩, 비디오테이프 케이스를 활용하는 것. 절약이 몸이 밴 일본 주부들 사이에서 곤도식 수납법은 ‘곤도류(流)’, ‘곤도이즘’, ‘곤도스타일’로 불릴 만큼 인기가 높다. 그가 소개한 옷걸이나 빨래집게는 다음 날이면 소매점에서 동이 날 정도다.

곤도 씨의 수납 노하우는 올해 일본 초등학교 5, 6학년 가정 교과서에도 실릴 예정이다. 전문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일반인의 노하우가 교과서에 실리는 것은 일본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다. 한국에서는 2004년 ‘우리집 수납정리’(아카데미하우스)라는 자신의 수납 노하우를 담은 책을 펴낸 것 외에는 별다른 활동이 없었지만 한국 살림 고수들 사이에서는 이미 곤도식 수납 비법이 알음알음 퍼진 지 오래다.

코오롱건설과 함께 아파트의 수납공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곤도 씨가 동아일보 기자를 일본 도쿄 집으로 초대했다.

○“수납은 가족에 대한 배려”

19일 찾은 그의 집은 유명인사의 집답지 않게 소박했다.

인터뷰가 진행된 곳은 곤도 씨의 거실. 주방과 맞닿아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그만의 독특한 그릇 수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는 그릇을 쌓는 대신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서류함을 활용해 옆으로 세워 보관한다고 말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거실과 주방에는 대리석 식탁이나 값비싼 도자기 대신 쓴 지 꽤 된 듯한 검은색 가죽 소파와 벽걸이TV, 아일랜드 식탁과 의자가 있을 뿐이었다.

“저는 6년간 대청소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 대신 그때그때 청소하기 쉽도록 청소도구를 쓰기 편한 곳에 둔다든지 가족들이 물건을 잘 정리할 수 있도록 수납에 신경을 쓴답니다.”

곤도 씨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때 수납과 함께 청소를 가르친다고 한다. 청소를 배우고 난 후 주부들은 청소가 귀찮아서라도 수납을 제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기 때문이라는 것.

20년간 수납 전문가로 활약한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수납’을 물었다.

“집 안방에 어른 한 명이 족히 들어갈 만한 상자를 7개나 신줏단지 모시듯 사는 주부가 있었어요. 남편이 아내의 7상자를 해결해 달라고 저에게 SOS를 보냈죠. 가서 보니 상자 안에는 이 주부의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딸을 위해 직접 손으로 만든 옷들로 가득했죠.”

세상을 뜬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그 주부는 입지도 않을 옷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던 것. 하지만 그런 주부의 마음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기이할 뿐이었다.

과연 곤도 씨가 내린 처방전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7상자에 가득 담겨 있던 수백 벌의 옷을 10권의 앨범으로 줄인 것.

“어머니가 정성스레 만들어준 옷 사진을 찍고 어릴 적 그 옷을 입고 찍었던 사진을 나란히 앨범에 담았어요. 무엇을 기념해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옷인지 간단한 설명과 함께요. 그리고 그 옷에서 가장 때가 탄 부분을 잘라 사진 옆에 붙여두었죠.”

그에게 수납이란 가족에 대한 배려다. 그는 집이 모두가 함께 사는 공간인 만큼 수납을 하면서 상대방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지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조언했다.

30년째 함께 살고 있는 남편과 그 사이에는 아이가 없다. 그래서인지 그가 컨설팅한 집을 보면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거실을 만들거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2층 침대로 독특한 공간 활용을 하는 등 유독 아이를 위한 수납방식이 눈에 띈다.

“불임으로 마음고생도 많이 했죠. 결혼 초 유산으로 아이를 잃었는데, 당시 오사카에 있던 친정어머니가 저를 보러 올라오시면서 노점상에서 도금 목걸이를 사오셨어요.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상심해 있을 딸을 위로하기 위해 사셨던 것 같아요.”

곤도 씨는 당시 어머니에게서 받은 목걸이를 인터뷰 내내 걸고 있었다. 도금 목걸였지만 20여 년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깨끗했다.

“이 목걸이도 그냥 뒀으면 얼마 안가 버렸겠죠. 마른 천에 싸서 보관했을 뿐인데 아직도 쓸만해요. 수납은 추억이 아니라 언제든 사용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그 물건의 수명도 길어진답니다.”

○ 이삿짐센터 도우미에서 수납 여왕으로

평범한 주부에서 ‘수납의 여왕’이 된 사연은 드라마틱하다. 결혼 전 접골원에서 일하던 그는 이삿짐센터를 운영하던 남편의 권유로 이삿짐을 정리해주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사실 결혼 후 5년간은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워낙 운동을 좋아해 또래 여학생들과 달리 살림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어요.”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삿짐을 정리해주면서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수납법을 터득하게 된 것. 그러다 20년 전 한 출판사 편집장의 이사를 도와주다 ‘곤도식 수납법’에 매료된 편집장이 이를 기사화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됐다.

그는 지금 수납 전문가 외에도 살림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홈앤드라이프 인스티튜트’라는 사설 교육기관도 운영 중이다. 최근 이 교육 기관에는 60, 70대 노년층 수강생이 부쩍 늘었다.

“일본에서는 60대 이상 고령 인구만 사는 노년 가구가 크게 늘고 있어요. 그런데 아내의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가사를 떠안게 된 남편들이 당혹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걸레질하는 법, 옷을 개는 법을 배우러 오는 할아버지들이 많아 앞으로는 살림 전문가를 양성하는 전문 교육과정도 만들 계획이에요.”

그의 수납 및 살림 노하우는 항상 기존 사고를 뒤엎는 데서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직접 교실을 청소할 때 쓸 걸레를 갖고 다녀요. 보통 엄마들은 헌 수건을 3번 정도 접어 바느질을 해서 아이들에게 들려 보내죠. 하지만 바느질을 하지 않고 아이들 손 안에 걸레가 들어가게끔 4번 접어 쓰면 걸레의 16개 면을 활용해 쓸 수 있어요. 단순한 방법이지만 시간은 물론, 물, 체력, 세제도 아낄 수 있죠.”

○ 올해 7월 국내에도 곤도 스타일 주거공간 소개

2004년 자신의 수납 노하우가 담긴 책을 펴낸 이후 이렇다 할 한국에서의 활동이 없었던 곤도 씨는 지난해 7월부터 코오롱건설과 손잡고 가족들의 동선(動線)을 쫓아 수납공간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코오롱건설 장혜경 과장은 “한국 주부들은 수납 공간이 있어도 집안이 쉽게 지저분해지는 등 주거 공간을 꾸미는 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 수납을 꼽는다”며 “한국보다 주거 공간이 좁은 일본에서 수납 전문가로 명성을 얻은 곤도 씨가 이번 프로젝트의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올해 7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코오롱건설 압구정주택문화관에 곤도 씨의 수납 노하우가 담긴 코오롱 하늘채가 소비자에게 소개될 예정이다.

최근 6개월간 코오롱건설과의 프로젝트를 위해 한 달에 두 차례씩 한국을 찾는 곤도 씨는 한국의 아파트가 일본에 비해 굉장히 넓은 반면 개방감을 강조한 나머지 공간 활용이 100% 이뤄지지 않는 점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한국에서는 현관과 가까운 방을 아이 방으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 방은 부모가 있는 안방과 가까운 곳에 둘 필요가 있어요. 아이가 부모의 모습을 곁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져야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답니다.”

한편 20년간 일본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곤도 씨의 톡톡 튀는 수납법은 다음 달 6일부터 본보 마이위크엔드에 ‘곤도의 수납이야기’로 매주 연재될 예정이다.

글·사진=도쿄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애완견 세수대… 진공청소기 걸이…

‘곤도식 주택’ 주부를 위한 완벽한 배려

다이와하우스는 2005년 곤도 씨와 손잡고 가족의 동선을 분석한 맞춤형 주택 서비스 ‘케이스하우스스터디’를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침대 밑이나 옷장 위 선반에 상자를 켜켜이 집어 넣는 것이 전부인 기자는 곤도만의 공간 해석법이 궁금해졌다.

18일 찾은 일본 요코하마(橫濱) 시 스즈키(都筑) 구 다이와하우스 주택전시관. 216.21m²(약 65.4평) 규모의 다이와하우스 2층짜리 견본주택을 둘러보는 데만 걸린 시간이 3시간. 집을 둘러보는 내내 기자는 “어머, 바로 이거야”라는 탄성을 십수 번은 질렀다. 주부의 불편함을 배려한 곤도 씨의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 집이 내세운 것은 바로 ‘문(門)의 변화’다. 대부분이 방으로 들어가기 위한 문이 아닌 수납장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장의 깊이가 10∼20cm로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도 놀라운 수납 효과를 자랑했다.

또 이 견본 주택의 현관은 하나이지만 집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2개다. 한 곳은 주방과 거실로 이어지는 통로다. 다른 한 곳은 우산걸이대→슬리퍼보관함→간이세면대→애완견용 세수대→생수, 식품 보관창고→세탁실→주방 등으로 이어지는 통로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라면 손을 닦고 더러워진 겉옷과 양말을 벗어 세탁함에 넣은 후 주방에서 마른 목을 축일 수 있도록 가족의 동선을 응용한 통로다. 퇴근 후 대형마트에서 장을 본 엄마라면 무거운 생수를 현관에서부터 낑낑대며 베란다까지 들고 가는 대신 현관 가까운 곳에 있는 보관 창고에 둘 수 있다. 산책을 한 후 더러워진 애완견을 바로 씻길 수도 있다. 일반 가정에서 현관에 들어오면서부터 하게 되는 일상을 연상해 집이라는 공간에 접목한 것.

거실에도 TV 뒤 벽면에 붙박이장을 만들어 아이들을 위한 수납공간으로 활용했다. 아이들이 거실로 나와서 엄마와 함께 학교 숙제를 하거나 책을 보는 경우가 많다는 것에 착안한 공간 활용법이다.

다이와하우스 관계자는 “엄마와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의 학업성적이 좋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며 “주방에 있는 엄마의 시선이 아이들에게 쉽게 향할 수 있도록 거실의 활용도를 높였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의 눈을 잡아끈 것은 주방 옆 수납장 안에 있던 작은 옷걸이용 후크였다.

하루에 한두 번씩은 사용하게 마련인 진공청소기. 곤도 씨는 매번 베란다에 있는 진공청소기를 힘들게 옮기는 대신 주방 옆에 수납장을 만들어 진공청소기를 둘 것을 제안했다. 자신의 키에 맞춘 진공청소기를 보관을 위해 줄였다 늘렸다 하는 대신 벽에 후크를 달아 손쉽게 걸 수 있도록 했다. 일본 주부들 사이에서 ‘곤도류(流)’라 불리는 곤도 씨만의 ‘사용을 위한 수납’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요코하마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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