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명가 vs 흑인 음악의 메카.’ 미국은 물론 세계 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음반 레이블인 ‘블루노트’와 ‘모타운’이 올해로 각각 탄생 70주년과 50주년을 맞았다.
블루노트는 “재즈 팬들에게 맹목적인 신뢰와 동경을 약속하는 파란 딱지”(하종욱 재즈평론가)로 불리는 세계 최고의 재즈 전문 레이블. 모타운 역시 미국 팝 음악의 중심으로 세계적인 흑인 뮤지션을 배출해 왔다. 이 두 레이블의 대표 레코드만 살펴도 웬만한 세계 팝과 재즈의 역사가 정리될 정도이며 그 역사는 현재진행형이다.
흑인 음악의 ‘살아 있는 전설’로 꼽히는 스티비 원더는 현재도 모타운 소속으로 활동 중이며, 세계적인 재즈 싱어 노라 존스와 한국인 2세인 프리실라 안도 블루노트 소속이다. 칠순을 맞은 재즈의 본산 블루노트와 반세기 동안 세계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모타운의 역사 및 대표 뮤지션 등을 살펴봤다.
○ 아티스트 지상주의 vs 흑인의 정신
블루노트는 1939년 독일 출신 유대인 알프레드 라이언이 설립한 회사. 재즈 전문 레이블답게 ‘재즈의 황금기’라고 불리던 1950, 60년대에 빛을 발한다. 특히 “초기 재즈 정신을 계승하면서도 더욱 첨예하고 탄력적인 사운드를 구축해”(김정민 재즈칼럼니스트) 블루노트만의 음악 스타일을 만들어 냈다.
블루노트가 꾸준히 대중에게 사랑받은 요인은 창립 이래 지켜온 ‘아티스트 지상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하 평론가는 “이 레이블에 자유로운 구성의 레코드가 유독 많은 것은 앨범 제작에 뮤지션의 주장과 요구를 드넓게 수용한 원칙 덕분”이라고 말했다. ‘RVG’로 통용되는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가 구현한 재즈 리코딩 사운드도 여기에 한몫했다.
모타운은 창립자 베리 고디의 한마디로 요약된다. “흑인이 미국 음악의 중심이 되자.” 당시 미국 음악 산업은 대부분 백인이 점유하고 있었다. 1959년 흑인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디트로이트의 별명 ‘모터 타운’에서 따온 모타운은 ‘흑인 레코드사에서 흑인 아티스트를 발굴하자’는 의지에서 탄생한 것이었다. 당시 반향은 엄청났다. 1961∼1971년 빌보드 차트 10위 안에 모타운에서 나온 곡만 110곡이 들어 있었다. 무엇보다 모타운의 매력은 “어렵지 않고 익숙한 멜로디와 리듬”(임진모 음악평론가)에 기인한다. R&B(리듬앤드블루스)에 바탕을 두되 밝고 경쾌한 느낌을 강조해 흑인을 넘어 세계 시장에 어필했다.
○ 존 콜트레인 vs 스티비 원더
스티비 원더는 모타운이 발굴한 최고의 뮤지션이다. ‘슈퍼스티션’(1972년)을 비롯한 수많은 히트곡을 모타운에서 발표했으며 지금도 이 레이블에 적을 두고 있다. 마이클 잭슨이 속했던 ‘잭슨 파이브’도 간판스타. 1970년 빌보드 1위를 차지했던 ‘아일 비 데어’를 부를 당시 잭슨은 12세였다. 이후 팝의 황제로 등극하는 자양분을 모타운에서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타운엔 인기그룹이 많았는데 여성그룹 ‘슈프림스’를 비롯한 ‘템테이션스’ ‘미러클스’ 등이 모두 이곳 소속이었다.
슈프림스 출신인 다이애나 로스나 라이오넬 리치, 마빈 게이도 빼놓을 수 없다. 로스와 리치의 ‘엔드리스 러브’, 리치가 부른 ‘세이 유, 세이 미’, 게이의 ‘레츠 겟 잇 온’ 등은 지금도 사랑받는 노래들이다.
모타운에 스티비 원더가 있다면 블루노트에는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이 있다. 1957년 명반 ‘블루 트레인’을 비롯한 수많은 콜트레인의 걸작 리코딩이 블루노트에서 이뤄졌다. 콜트레인은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재즈 뮤지션이다. 호레이스 실버, 아트 블레이키, 덱스터 고든, 리 모건, 허비 행콕 등 이름 자체가 재즈의 역사인 이들이 블루노트에서 활동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