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외채 급증 - 동유럽 경제위기 ‘내우외환’
외국인 15일째 순매도… 외환시장 불안 확산
당국 “외화차입금 충분히 대응 가능한 수준”
3월 금융시장이 원화 가치와 주가가 함께 급락한 ‘블랙 먼데이’로 출발했다. 미국 및 동유럽발(發) 금융 불안이 대외 의존도가 높고 단기 외채가 많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약점과 맞물리면서 ‘위기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이 작은 충격에도 흔들릴 정도로 취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국이 주요국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체결하는 등 다양한 시장안정 장치를 갖췄기 때문에 작년 가을과 같은 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과민반응을 경계했다.
○ 다시 신흥시장에서 빠져나가는 달러
미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재정 지출을 늘리고 있는 가운데 씨티그룹, AIG 등의 금융회사 구제에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면 또 한번 ‘달러 가뭄’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각국을 떠도는 달러 자금이 미국 부실금융사 지원에 동원되면 한국 등 신흥국가의 달러 사정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동유럽 국가의 경제위기도 달러로 대표되는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부채질하고 있다. 동유럽 국가에 돈을 빌려준 서유럽 은행이 무너지는 사태가 현실화하면 ‘리먼브러더스 파산’에 못지않은 연쇄 도산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증시에서 외국인들이 2일까지 15거래일 연속 순매도 행진을 이어간 것은 이 같은 글로벌 금융시장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위험 기피 현상이 심해지면서 신흥시장 채권의 가산금리(신흥시장 채권지수+스프레드)는 2007년 중반 1.6%포인트에서 최근 6.5%포인트로 확대됐다. 위험이 더 커졌으니 자금을 조달하려면 그만큼 웃돈을 얹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 단기외채가 ‘위기설’의 진원지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지난해 하반기처럼 한국의 단기 외채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1년 내에 갚아야 할 외채(유동외채)가 외환보유액(약 2017억 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한국의 유동외채는 2005년 말 864억 달러에서 지난해 말 1940억 달러로 급증했다. 외환보유액 대비 유동외채 비율은 같은 기간 41.1%에서 96.4%로 치솟았다. 숫자로만 보면 적신호가 켜진 것이 분명하다.
외환당국은 “외채 중에는 조선사가 환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미리 선물환을 팔아놓은 환헤지용 외채가 많은데도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 강조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통계상 외채로 분류되지만 해외에서 선박대금이 들어오면 저절로 사라지는 빚이라는 것. 조선사의 환헤지용 외채(390억 달러)를 빼면 유동외채 비율은 77%로 떨어진다.
○ 국제시장 안정과 달러 조달이 관건
3월이 특히 주목받는 것은 이달에 만기가 돌아오는 국내 은행의 외화차입금(1월 현재)이 55억8000만 달러로 올해 만기분(245억4000만 달러)의 22.7%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규모는 예년보다 작을 것으로 보이지만 외국인의 주식배당금 송금도 이달 말에 이뤄진다. 달러의 해외 이탈 요인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외화차입금 가운데 작년 가을 수준의 차환만 이뤄져도 외환보유액으로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며 “국내 금융권이 서유럽 은행에서 빌린 돈의 규모도 크지 않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