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하루에 먹는 자장면의 면발을 이으면 지구 한 바퀴 반을 돌 수 있는 길이다.”
“‘철가방’은 중국인들이 예전부터 음식을 나르던 나무상자에서 유래됐다는 주장도 있고 일본인들이 에도시대부터 우동을 배달시켜 먹을 때 사용하던 나무가방에서 유래됐다는 주장도 있다. 정확한 유래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철가방은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이 선정한 ‘코리아 디자인 목록’ 52개 가운데 하나다.”》
양세욱 교수 이색학술서 ‘짜장면 뎐’ 펴내
자장면을 소재로 한 이색 학술서가 나왔다. 제목은 ‘짜장면 뎐(傳)’(프로네시스). 한양대에서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가르치는 양세욱 연구교수(37)가 쓴 책이다. 머리말이 마치 무협지의 도입부처럼 비장하다.
‘한국과 중국 두 나라가 근대적 외교 관계를 모색하던 19세기 말, 자장면은 어떤 이의 주목도 받지 못하고 조용히 황해를 건너 한반도에 상륙했다. 반세기 남짓 암중모색을 거치고 난 20세기 중반 이후로 자장면의 검은 유혹은 마침내 한국인을 사로잡았다.’
양 교수는 ‘중국에는 없다’는 식으로 알려진 자장면에 대한 진실을 찾기 위해 2003년부터 중국과 한국의 중국음식점을 100군데 넘게 답사했다. 그는 답사 결과를 바탕으로 책에서 “자장면은 중국 산둥(山東)의 가정에서 먹던 음식에서 유래했다”고 말하지만 이 책이 ‘자장면의 기원 찾기’를 서술한 책은 아니다. 양 교수는 “한국의 생활문화사, 근현대 한중 교류사, 한국 내 화교의 역사 등을 자장면 한 그릇에 담아 비볐다”고 소개했다.
책의 골자는 ‘중국음식인 자장면이 한국에서 어떻게 이처럼 성공을 거뒀을까’라는 호기심에 대한 문화사적 탐구다. 양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자장면의 성공 요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1950년대 이후 한국에서 도시인구가 급증하면서 외식문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사실. 양 교수는 “평소 먹는 식사와 달리 이색적이면서도 일식, 양식보다 싼 중국음식은 당시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으로 볼 때 외식용으로 적당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산업화’가 꼽혔다. “모든 걸 빨리빨리 해야 했던 시절, 3분 만에 조리 가능하고 3분 만에 먹을 수 있었던 자장면은 산업화 시대의 안성맞춤 먹을거리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사회적 요인들이 가세했다. 우선 한국 내 화교들이 1949년 중국의 공산화로 돌아갈 곳을 잃은 데다 중국과의 무역업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자 대거 음식점 영업으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양 교수에 따르면 전체 화교 인구에서 음식점 종사자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1949년 40.3%에서 1972년 77%로 증가했다.
양 교수는 “화교들은 포목점 가위인 전도(剪刀), 이발소 면도용 칼인 체도(剃刀), 음식점 조리용 칼인 채도(菜刀)를 갖고 왔다고 하는데 이 가운데 채도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해석했다. 1960, 70년대 정부의 혼식·분식장려운동도 자장면의 성공을 뒷받침했다. 대체 음식 정도로 여기던 밀가루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이렇게 성공가도를 달려온 자장면의 오늘날 위상에 대해 양 교수는 “내리막길을 걷는 중”이라고 말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패스트푸드 업체가 속속 생기면서 중국음식을 대체할 외식 품목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자장면은 그동안 영화(북경반점), 연극(짜장면 불어요), 동화(짜장면), 시(짜장면을 먹으며), 가요(짬뽕과 짜장면) 등 다양한 예술 장르의 소재가 됐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진지한 접근을 한 저술은 없었다고 양 교수는 말했다.
“자장면은 한국인의 생활에 중요한 오브제인데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습니다. 자장면의 위상이 더 추락하기 전에 우리 생활문화사의 주요 소재를 학술적으로 자리매김시켜줄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게 자장면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동아닷컴 주요기사
- “실직했단 말을 어떻게…” 실직자 19% “가족에 숨겨”
- ‘물좋은 강남署’ 옛 이야기? 600명 물갈이, 지원자는 150명
▶ 동아닷컴 인기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