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보물 보따리
나물을 좋아하면 철이 든 것이라고 한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끓는 물에 데쳐 소금과 참기름만으로 무쳐낸 냉이만 해도 그렇다. 쌉쌀한가 하면 고소하고, 질긴가 하면 부드럽고, 오래 묵은 듯하면서도 시원하리만치 향긋하지 않은가.
‘나물’ 소리만 들어도 저절로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내 어머니인데, 나물 한 접시면 얼마든지 맛나게 한 끼의 식사를 뚝딱 해치운다. 산해진미에 취한 왕후보다도 더 만족스럽게. 옆에서 아무리 쇠고기를 구워대도, 나물에 쓱싹쓱싹 밥을 비벼 배를 채우는 분이 바로 내 어머니다. 어머니는 올해 환갑으로 소띠다. 소띠라서 그렇게나 나물을 좋아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다 한 적도 있다.
그래서 봄만 되면 어머니는 바쁘다. 산으로 들로 나물을 뜯으러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가능한 한 깊은 곳, 도로가 닿지 않는 곳까지 들어가 나물을 캔다. 어머니가 가장 먼저 캐는 나물은 냉이이다.
그 다음은 쑥, 달래, 민들레, 씀바귀, 기름나물, 두릅, 고들빼기…. 그렇게 지천으로 널려 있을 나물들이 눈에 밟혀 집에서 편하게 드러누워 텔레비전이나 볼 수 없는 것이다. 봄나물을 자식에게 먹이고 싶어 대전에서 서울로, 무슨 금은보화라도 되는 양 꼭꼭 싸서 보내오기도 한다.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냉장고 속에서 썩히고 버린 나물이 대체 몇 봉지나 되던가.
올봄도 어김이 없다. 봄이 다 가기 전까지 어머니는 날마다 나물을 캐러 다닐 테고, 자식들과의 전화를 늘 나물 이야기로 시작할 것이다. 며칠 전 전화에서는 쑥 이야기를 꺼낸다. 쑥을 잔뜩 캐다 말리고 있는데, 다 말리면 다른 곡물들과 섞어 미숫가루를 만든다는 게 어머니의 계획이었다.
어느 해부턴가 봄만 되면 내 혀가 저절로 나물의 맛을 갈구하는 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 먹어본 나물의 맛을 내 혀가 용케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부디 봄나물들이여, 자멸하지 말고 살아 흙을 뚫고 나와라. 한 줌의 흙밖에는 없는 곳에서라도. 너희들을 맛나게 무쳐, 불로초라도 되는 양 황송하게 먹어줄 내 어머니가 아직 살아 있으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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