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 아하, 이맛!]도다리 쑥국

  • 입력 2009년 3월 6일 02시 59분


입안 가득 향긋한 봄

묵은 음식들이 느끼해진다. 겨우내 온 집안 천장 마루 벽지에까지 밴 ‘곰삭은 맛’들. 시큼 들척지근한 익은지, 퀴퀴하고 짭조름한 젓갈, 비릿 곤곤한 청국장, 큼큼 군내 나는 된장찌개 냄새….

날것이 그립다. 입춘 우수 경칩 지나면 혀끝은 도리질을 친다. 흙냄새 밴 풋풋한 것에 허기가 진다. 아삭아삭 ‘봄동 겉절이’가 불쑥 먹고 싶고, 쌉싸래한 고들빼기김치 생각에 침이 고인다. 그러다가 상큼한 미나리강회가 떠오를 때면, 그만 ‘입 몸살, 혀 몸살’에 온몸이 달뜬다.

도다리쑥국은 남해안 사람들의 ‘이른 봄 음식’이다. 시인에게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오지만(이성부)’, 통영 거제 고성사람들에게 ‘봄은 도다리쑥국을 먹지 않으면 결코 오지 않는다.’

도다리쑥국은 담백하고 시원하다. 향긋한 쑥 냄새와 담백한 도다리 맛이 주다. 봄 도다리 살은 사르르 녹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다. 크기는 보통 20∼30cm. 하지만 심오한 맛을 기대하다간 실망하기 십상이다. 맛이 그만큼 소박하고 단순하다.

요리법도 식당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큰 줄기는 간단하다. 육수에 된장 풀고 도다리 넣어 끓인 뒤 마지막에 여린 해쑥을 넣는 식이다. 양념(파+다진 마늘)을 많이 쓸수록 쑥 향기가 사라지기 때문에 되도록 넣지 않는다. 쑥은 도다리가 완전히 익은 뒤에 넣어야 한다. 너무 일찍 넣으면 쑥이 풀어지고, 향이 사라진다. 색이 노랗게 되어 질겨진다.

육수는 보통 무 다시마 대파를 푹 끓여 만들지만 여기에 멸치를 넣는 집도 있다. 육수 대신 쌀뜨물만 쓰는 집도 있다. 여수에서는 쑥뿐만 아니라 냉이 들깨까지 함께 넣는 곳도 있다. 쑥은 거문도 욕지도 사량도 한산도 등 남해바다 섬들의 논둑길 밭둑길에서 자란 것을 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우우우 돋은 조선 쑥, 겨우내 언 땅을 뚫고 나온 여린 쑥, 결 고운 남해 햇살을 받으며 자란 노지 쑥. 비닐하우스 쑥은 도다리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 조미료는 절대 금물.

도다리는 봄에 살이 통통 오르고 맛도 으뜸이다. 겨울에는 제주바다에서 산란을 하다가 봄이 되면 남해안으로 올라온다. 산란할 땐 살이 적고 육질도 푸석하다.

도다리는 언뜻 생김새가 광어와 흡사하다. 보통 ‘좌광우도’로 구분한다. 즉 물고기와 마주보았을 때 눈이 왼쪽에 몰려있으면 광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다.

도다리쑥국은 통영이 최고다. 통영에선 시내 어디에서나 도다리쑥국을 먹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시락국(시래기국)으로 유명한 새벽 서호시장 부근이 ‘왁자’하다. 사람과 생선이 펄펄 살아 뛴다. 봄은 이미 이곳을 한바탕 훑고 저만치 올라갔다.

새벽 서호시장 도라무통에 피는 불꽃이 왁자하였다/어둑어둑한 등으로 불을 쬐는 붉고 튼 손들이 왁자하였다/숭어를 숭숭 썰어 파는 도마의 비린내가 왁자하였다/국물이 끓어 넘쳐도 모르는 시락국집 눈먼 솥이 왁자하였다/시락국을 훌훌 떠먹는 오목한 입들이 왁자하였다 <안도현 ‘통영서호시장 시락국’>

분소식당(055-644-0495) 터미널회식당(055-641-0711) 수정식당(055-644-0396) 한산섬식당(055-642-8021) 명실식당(055-645-2598) 등이 유명하다. 값은 1만 원 안팎. 파래무침 멸치젓 등 밑반찬도 소박 정갈하다.

서울에도 통영전문식당이 있다. 중구 다동 하나은행 본점 뒤 충무집(02-776-4088)은 매일 통영에서 직송된 생선과 쑥으로 맛을 낸다. 도다리쑥국(1만2000원)에 멍게젓 비빔밥(3000원) 한 그릇이면 온 몸에 가득 봄이 출렁인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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