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은 장기 기증… 법무법인은 무료공증 ‘기증’

  • 입력 2009년 3월 7일 02시 59분


6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 40대로 보이는 비교적 젊은 스님 40여 명이 극락전에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얼마 뒤 자리가 정돈되고 이들 앞에는 종이가 2장씩 놓였다. 한 장은 세상을 떠난 뒤 전 재산을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내용이 적힌 유언장, 다른 한 장은 장기를 기증하겠다는 신청서였다.

평소 ‘무소유(無所有)’를 실천하는 스님들이지만 처음 써보는 유언장 앞에서 다소 우왕좌왕했다. 스님들은 한자 한자 정성스레 유언장과 신청서를 적은 뒤 곱게 접어 안내위원에게 건넸다.

세상을 떠나며 각막까지 아낌없이 기증한 김수환 추기경의 ‘아름다운 이별’이 종교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현장이었다.

이날 이들 스님이 모인 이유는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라는 모임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는 전국의 젊고 개혁적인 지도층 스님들이 부처님 말씀대로 살고자 서원하고 한국 불교의 대안을 논의하기 위해 2006년 4월부터 준비해 온 모임이다. 이들은 한국 불교의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주기 위해 창립식에서 유산과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나섰다.

이러한 약속이 이뤄지기까지 어려움도 많았다. 스님들이 세상을 떠난 뒤 생길지 모르는 가족들의 상속권 다툼이 염려돼 유언에 대한 확실한 공증이 필요했다. 그러나 공증에는 건당 300만 원가량이 들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법무법인 신아의 김형남 변호사는 김우경 대표변호사와 상의해 법인 차원에서 돕겠다고 나섰다. 유언집행자로서 유언장 작성부터 사후 집행까지 모두 무료로 맡기로 한 것. 김 변호사는 “미국 속담에 ‘변호사는 나쁜 이웃’이란 말이 있는데, 로펌이 이젠 국민에게 좋은 이웃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일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동아일보 이훈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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