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어머니가 ‘너는 돈 되는 데만 가냐?’라고 타박하시던 게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아요.”
9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한 음식점에서 만난 박동규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70·사진)는 10년 전 병원에 입원해 계신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말을 털어놓았다. 그 입원비를 대기 위해 강의를 하고 청탁받은 원고를 쓴다며 자신을 자주 찾아오지 않았던 아들에게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 서운함을 표시했다. 박 교수는 그때의 죄송스러움이 지금도 가슴에 맺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케이블 채널 KTV의 토크 프로그램 ‘내 마음의 고백’(13일 오후 8시 40분 첫 방영)의 진행을 맡았다. 월간 시전문지 ‘심상’을 36년째 발간해 오고 있는 박 교수가 TV프로그램의 MC로 나선 것은 1995년 폐지된 KBS ‘문화가 산책’ 이후 14년 만이다.
“TV에 누가 나오면 (시청자들이) ‘저 사람은 어느 패거리인데…’ 하는 말을 먼저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로 내편 네편을 가르는 일을 겪었지만 마음의 고백을 통해 서로 용서하고 정서적으로 융합할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어요.”
이 프로그램은 각계 명사의 고백과 이를 재연한 드라마, 주부 노동자 시장상인 등 ‘보통 사람들’의 고백으로 구성된다. 첫 회에는 시인 황금찬 선생(91)이 40년 넘게 알고 지낸 박 교수에게 1974년에는 딸을, 1998년엔 아내를, 올해 1월에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과 자신의 삶 속 후회되는 일을 고백한다. 2회에는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3회에는 배우 최불암 씨가 나온다.
박 교수는 “합치는 얘기는 없고 갈라서는 말만 있는 가운데 국민들은 ‘전망’을 상실하고 있다”며 “잡스러운 언어로 서로를 분열시키고 공격하는 데 보낸 세월을 청산하고 뭉쳐서 살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명사들 성공스토리 들으려는 것 아니에요. 세상에 어느 놈이 자기 잘못한 거 고백하라면 좋아하겠어요? 하지만 얘기 안하고 맺힌 채 사는 것보다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는 좋은 세상 만들어야죠. 모욕, 굴욕, 개인적 원한, 사회적 입장 차이 모두 털어놓는 프로그램 만들겠습니다. 고백과 따스함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면 좋겠어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