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충무아트홀서 ‘플로라’ 공연
《“여러분을 보니 국어책에서 읽었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떠오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한 가지 길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잖아요? 그래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미련이나 후회가 남는 거고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 참 잘하셨습니다. 끝까지 이 길에 대한 열정을 태워 주세요.”(김희철 충무아트홀 공연기획부장)
10일 오후 7시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지하 2층 연습실. ‘제1회 도심 뮤지컬 캠프’라고 적힌 수업은 참가자 18명이 양말을 벗는 것으로 시작됐다.
잠시 후, 이 중 한 명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휴대전화를 꺼달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캠프의 연출 및 연기지도를 맡은 이재준 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맞아요. 여기 들어올 때만큼은 바깥세상을 잊어주세요.”》
“연기를 전공하고 싶다”는 고등학생 김명수 군(19)부터 “‘노트르담 드 파리’ 무대에 서는 꿈만 꾸고 살았다”는 건축사무소 직원 최윤진 씨(28), “부모님의 반대로 연출 전공 대학에 못 들어갔지만 이젠 내 뜻대로 살고 싶다”는 대학생 윤소라 씨(21)까지….
이들은 10일부터 매주 두 차례 교육을 받아 7월 30일 충무아트홀 소극장 무대에 서게 될 예비 뮤지컬 배우들이다. 약사, 중소기업 대표, 공익근무요원 등 참가자들은 다양했다. 주최 측은 “한 번도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없는 보통 사람들 위주로 선발했다”고 밝혔다.
이 중 가장 연장자는 교육상담업체 웨스트에듀케이션 대표인 최재하 씨(40). 학생들의 진로를 상담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는 “어느 날 어릴 적 꿈을 잊은 채 살아가는 내가 과연 학생들의 진로를 상담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 들어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2월 28일 진행된 오디션에는 40여 명이 몰렸다. 자유곡과 지정곡 외에 중요한 과제는 사회생활에서 겪은 불만을 독백으로 연기하는 것. 대부분의 응시자는 직장 동료나 상사에 대한 불만 등을 털어놓았다. 중학교 때 본 뮤지컬 ‘코러스 라인’을 보고 배우로서 꿈을 키웠다는 약사 이정은 씨(31)는 “얼마 전 병원 직원의 실수로 500만 원에 가까운 세금을 과다 징수당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3시간 동안 진행된 수업은 숨쉴 틈 없이 빡빡하게 진행됐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상대방의 눈을 피하지 말고 인사하기, 두 명씩 등을 대고 선 상태에서 앉기 등 연기 수업이 이어졌다. 연출자는 수업 내내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방을 믿는 것” “모든 연기는 상대 배역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강조했다. 음악감독 이정은 씨의 복식호흡 훈련과 가성으로 소리 내기 등 음악 수업도 진행했다.
수업을 마친 후 고경희 씨(28·힐튼호텔 인턴사원)는 “주위에서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하면 ‘제 정신이냐’는 반응 일색이었는데 이렇게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가슴 벅찼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의 도전은 단순한 교육을 받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발성, 가창, 연기, 춤 등 뮤지컬 배우가 갖춰야 할 자질을 지도받은 뒤 7월 30, 31일 초연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플로라’ 무대에 서게 된다. 이 작품에는 18명의 수강생만 참여한다.
새로운 길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최유림 씨(26·프리랜서)는 “간만에 저녁을 안 먹고 뛰니 어지럽고 힘들다”며 “배우가 얼마나 많은 열량을 소모하는 직업인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196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플로라’는 경제 공황기 뉴욕을 배경으로 그래픽 디자이너인 주인공 플로라의 꿈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뮤지컬 평론가 조용신 씨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참가자들은 4월 2일 오디션을 통해 정식으로 배역을 배정받은 뒤 연습에 들어간다. 김은숙 충무아트홀 차장은 “단순히 배우를 가르치는 아카데미가 아닌 ‘아마추어 프로덕션’의 개념으로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