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聞(다문)은 많이 듣는다는 말이니, 여러 사실을 두루 듣고 공부한다는 말이다. 擇其善者(택기선자)는 좋은 것을 가려내는 일로, 저술로 말하면 刪定(산정)을 가리킨다. 多見(다견)은 많이 본다는 말이니, 여러 사실을 두루 보고 공부한다는 말이다. 識는 기억할 지와 알 식의 두 음과 훈이 있는데, 여기서는 기억할 지이다. 정약용은 기록 지로 읽고, 경전에 대해 자기 견해를 기록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知는 원래부터의 완전한 지식을 말한다. 次(차)는 다음, 버금이란 뜻이다.
‘논어’ 爲政편에서 공자는 많이 듣고 의심나는 것은 빼놓는 多聞闕疑(다문궐의), 그리고 많이 보고 위태로운 것은 빼놓는 多見闕殆(다견궐태)를 강조했다. 述而편에서는 선왕의 도를 서술해서 전할 뿐이지 새로 만들어내지는 않는 述而不作(술이부작)과 선왕의 도가 옳음을 믿고 옛것을 애호하는 信而好古(신이호고)를 학문 태도로서 제시했다. 모두 이 章의 뜻과 통한다.
少見多怪(소견다괴)라는 말이 있다. 본 것이 적으면 진리에 대해 의심을 많이 한다는 말이다. 또 우물 안 개구리는 바다를 의심하고 여름 벌레는 얼음을 의심한다고 한다. 조선 인조 때 張維(장유)는 당시의 옹졸한 지식인들이 자기 견해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일체를 거짓으로 여겨 무시한다고 비판했다. 多聞多見을 통해 지식의 협소화와 권력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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