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休&宿/일본 스키<2>니가타

  • 입력 2009년 3월 13일 02시 58분


《‘메테 레 스키!(Mettez les skis).’ ‘스키를 신어라’라는 프랑스어다. 동계올림픽을 두 차례(1972년 삿포로 시, 1998년 나가노 현)나 열고 스키장이 한때 1200개(현재 500개 추산)나 됐고 아직도 토종브랜드 스키(오가사카)를 생산하는 ‘스키강국’ 일본의 스키역사 첫 페이지 첫 줄을 장식하는 역사적인 말이다. 그 현장은 98년 전인 1911년 1월 12일 오전 8시 5분 혼슈 동해안 니가타 현의 다카다(현 조에쓰 시)에 있던 보병 제13사단 58연대 연병장(현 조세이중학교 운동장)이다. 벽안의 유럽인 장교가 눈밭에 일렬횡대로 집합한 14명의 일본장교와 마주 서 있는데, 그들 앞에는 각각 나무스키와 막대기가 한 개가 놓여 있었다. 나무플레이트에 철제 바인딩이 장착된 당시로는 최신식인 릴리엔펠트식 스키(오스트리아 릴리엔펠트 마을에서 개발된 스키)였다. 바로 이 장면. 일본 스키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그 외국인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육군 소령 테오도르 에들러 폰 레르히(1869∼1945).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로 항진하던 세계 최강 러시아 발트해 함대를 동해에서 격침하며 러일전쟁(1904∼5)을 승리로 이끈 일본의 막강 군사력과 시스템을 보고자 42일 전 도착한 무관이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거꾸로 일본장교를 상대로 스키를 가르치는 강사였다. 이렇게 시작된 일본 스키역사. 그 시작이 재미있다. 강사는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육군 장교, 그 첫 마디는 ‘메테 레 스키’라는 프랑스어(당시 일본장교의 독일어 통역이 서툴러 프랑스어 사용), 첫 전수자는 일본육군의 보병장교, 첫 강습 장은 다카다의 연병장…. 레르히 소령의 강습은 꼬박 한 달간 계속됐다. 장소는 인근의 가나야 산. 그는 막대기(스톡) 하나로 무게중심을 옮기며 설산의 경사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원 스톡 스키기술을 가르쳤다. 일본은 운이 좋았다. 세계최고의 강사에게 강습을 받아서다. 그는 알파인스키의 창시자이자 슈템 턴(스키의 기본기술)을 개발해 ‘스키계의 뉴턴’이라고 불리며 추앙받고 있는 마티어스 츠다르스키(오스트리아)의 수제자였다. 》

깊은 눈밭에 새기는 ‘찰나의 흔적’

○ 일본 스키의 발상지, 다카다… 소설 ‘설국’의 무대

올해 1월 12일. 나는 다카다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일본 스키 발상지’ 가나야 산 옆 언덕배기의 레르히 동상을 찾았다. 동상의 레르히는 여전히 멋진 수염을 세운 채 높은 탑 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군복 차림에 모자를 쓴 채 릴리엔펠트식 스키를 신고 긴 장대 모양의 스톡(폴)을 든 채 먼 산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동상 아래서는 기념식이 한창이었다. 일본은 2002년 이날을 ‘일본스키의 날’로 정했다. 그리고 ‘스키발상기념관’(스키박물관)이 있는 이곳에서 매년 기념식을 열고 있다. 식후에는 자그마한 동산 규모의 가나야 산 슬로프에서 98년 전 첫 강습 당시의 복장으로 남녀가 릴리엔펠트식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이벤트도 벌인다. 아쉽게도 올해는 적설량 부족으로 시범행사가 취소됐다.

눈 많이 내리기로 일본에서 니가타를 능가할 곳은 없다. ‘설국’(雪國·노벨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이 쓰여진 곳 역시 이곳이다. 그런 니가타지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이곳 역시 적설량이 줄고 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지금도 눈에 관한 한 니가타를 따를 곳은 일본 전국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 그러니 겨울 스키여행지로 니가타를 선택했다면 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 일본 최초의 고원리조트로 개발된 묘코고원 스키장

이튿날 나는 다카다를 뒤로 하고 묘코고원으로 향했다. 묘코는 다카다의 남쪽 산악지방. 나가노 현과 가깝다. 10년 전 일본에는 ‘Mt.6(마운트식스)’라는 마케팅 프로그램이 있었다. 스키장 6곳을 한 묶음으로 알리는 것이었는데, 묘코고원이 시가고원, 하쿠바(이상 나가노 현), 자오산(야마가타 현) 등과 함께 들어있었다. 그 스키장의 공통점은 이렇다. 거대한 산자락 아래 자연스레 형성된 전통 마을에 묵으며 스키를 즐긴다는 점이다. 리조트 스키장이 아니라는 점이 포인트다. 거기에 온천이 있음은 물론이다.

일본은 어디로 가나 철도역이 중심. 묘코고원도 같다. 역에서 보니 묘코산(2454m)과 주변 산악이 병풍처럼 하늘을 가린다. 묘코산은 ‘에치고 후지’(에치고는 니가타의 옛 지명)라고 불릴 만큼 멋지다. 그 산자락이 평지로 잦아들다 해발 550m에서 멈췄다. 사람들이 거기에 둥지를 틀었다. 그게 고원도시 묘코다.

이 묘코촌의 스키장은 9개. 그중 7개가 묘코 산자락에 깃들었다. 묘코촌에는 온천마을도 7개나 된다. 산자락 마을은 주로 각 온천을 끼고 발달했다. 모두 JR묘코고원 역에서 자동차로 30분 이내다. 산 크고 눈 많으며 지면의 해발고도가 높고 온천 또한 풍부한 묘코고원. ‘스키천국’ 일본에서도 이렇게 완벽하게 휴양조건을 갖춘 스키마을은 흔치 않다.

첫날 찾은 곳은 묘코스기노하라 스키장. 묘코산 7개 스키장 가운데 최고다. 1124m라는 고도차(리프트 최정상과 스키장 베이스의 높이 차·국내 최고 무주리조트 810m)와 8.5km(국내 최장 무주리조트 6.1km)라는 스키 트레일도 놀랍지만 더더욱 특별한 것은 100% 자연 설 스키장이라는 사실이다. 적설량도 4m나 된다. 자연설만 이용하다 보니 개장이 늦다. 올 시즌은 12월 27일에야 문을 열었다. 폐장은 4월 5일.

함박눈이 내리던 아침. 리프트 정상(1855m)에서 첫 다운힐을 시작했다. 이 정도 강설이라면 서너 시간이면 무릎까지 빠지는 게 보통. 새벽에 압설을 마친 트레일이었건만 하염없이 내린 눈에 슬로프는 이미 그렇게 변해 있었다. 모처럼 ‘딥스노’(Deep snow)스킹을 즐길 절호의 기회였다.

그 느낌. 타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단단히 다진 압설 트레일에서 타는 우리식 스키와는 차원이 달라서다. 그것은 평면을 질주하는 2차원이다. 반면 딥스노 스킹은 공간을 질주하는 3차원이다. 깊은 눈 속에 파묻힌 채로 달릴 때 발생하는 플레이트의 부침(浮沈) 때문인데, 딥스노의 묘미는 바로 이 눈 속에서 좌우상하로 스키를 컨트롤하는 데 있다 .

이튿날은 역시 묘코산 자락의 아카칸(‘아카쿠라칸코’의 준말) 스키장으로 옮겼다. 이곳은 1937년 일본최초로 유럽 관광객을 겨냥해 개발한 알프스산장풍 호텔(아카쿠라칸코 리조트)에 부속한 스키장. 그래서 다른 스키장과 그 분위기가 판이하다. 우선 슬로프 한가운데, 그러니까 설산 중턱의 눈밭 한가운데 호텔이 있다. 덕분에 ‘스키인 스키아웃’(Ski in, Ski out·호텔 현관에서 스키를 신고 나가거나 스키를 신은 채 현관까지 올 수 있는 시스템) 호텔이다.

또 자작나무와 일본 낙엽송이 우거진 슬로프 가장자리를 따라 산장형 식당이 7개나 있다. 언제든 들러 따뜻한 음식과 음료를 먹으며 쉴 수 있어 좋다. 최장 트레일은 4km. 그러나 무엇보다 특별한 것은 10여 개 트레일 가운데 압설을 하지 않는 두 곳이었다. 딥스노 스킹 마니아를 위한 세심한 배려다.

○ 일본 최대 규모의 스키타운 에치고 유자와

셋째 날 찾은 곳은 묘코 동북쪽의 유자와 정. 소설 ‘설국’의 무대이자 작가가 3년간 머물며 소설을 완성한 료칸 다카항이 있고 마운트 나에바 등 스키장 13개와 숙소 331개가 있는 일본 최대 스키타운이다. 묘코에서는 국도 117호선을 따라 두 시간 반쯤 걸렸다.

가는 도중 나가노 현의 이야마(飯山)를 지났다. 이야마. 특별한 곳이다. 1921년 함남 원산에서 최초로 스키를 한국에 전수해준 나카무라 씨(당시 원산 중 교사)가 스키를 배운 그의 고향이어서다. ‘스키 70년사’(대한스키협회 1999년 발간)는 그가 이야마 중학의 교사였고 다카다 스키대회에서 여러 번 입상했으며 한국에 올 때 오스트리아제 스키 두 대를 가져와 전파했다고 적고 있다.

마운트 나에바 스키장은 내게 세 번째 방문이었다. 그런데도 가슴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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